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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玄齋) 심사정에 대해
Celine | jwhaha@nate.com | 입력 2020-11-09 06: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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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6대 화가를 흔히 삼원(三園) 삼재(三齋)라고 말한다. 삼원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을 말하며, 삼재는 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그리고 현재 심사정을 일컫는 말이다. 


그중 심사정(沈師正.1707~1769)은 조선화에 있어 남종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한 인물이기에 조선시대 미술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조선시대의 그림은 남종화(南宗畵)와 북종화(北宗畵)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그림 역사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것은 중국 그림 화풍의 영향을 많은 받은 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 연원은 중국의 동기창((董其昌1555-1636)과 같은 서예인들로 부터 시작되는데, 중국의 남쪽과 북쪽에 사는 서예인들의 필체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회화에서도 이러한 현상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후 조선으로 넘어온 중국의 그림들은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뉘게 된다. 즉 조선에서의 남종화는 수묵을 이용하여 사대부들이 취미와 명상을 위해 그리는 산수화(화조도, 풍경화 등)를 포함한 인물화, 도석화(동양화에서 신선이나 부처, 고승을 그린 그림)를 의미한다. 


그리고 북종화란, 직업 화가들이 외면적 묘사에 치중하여 꼼꼼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산수화 화풍의 그림이라고 쉽게 이해하면 될 것이다. 


남종화의 특징은 수묵선염을 이용하여 그림을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으로, 준법(皴法)도 비교적 부드럽고 우아한 피마준(披麻皴)등을 사용하여 운치 있게 산수를 표현하는 것에 있다.

 

현재 심사정은 겸재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산수화(山水畫)는 물론 화조화(花鳥畫),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등의 다양한 그림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중국 남종 문인화를 토대로 조선의 미감을 담은 조선시대 남종화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심사정은 매우 덕망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조상은 역모를 꾀한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의 집안이라는 오명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는 일생을 불우하게 살며 그림으로 연명하는 삶을 살았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에 좌절하지 않고 그림에 타고난 자질을 주위의 시선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평생 동안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 닦았다. 그러므로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선동도해(仙童渡海)/심사정/18C/22.5cmx27.3cm/지본수묵담채/간송미술관 그림 출처: 간송미술관

 

위의 그림은 달마를 모시는 선동동자를 그린 그림이다.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쪼그리고 앉아 양팔을 동그랗게 모아 무릎 위에 올린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선동동자는 지금 헤진 옷과 맨발의 상태로 작은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뒤의 갈대는 바람에 날리는듯하나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림을 보아 마른 잎의 갈대가 흔들리는 모습은 늦가을쯤으로 예측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선동동자는 지금 갈대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는 도상학적으로 갈대의 유무(有無)로 달마를 구분하는데, 지금 이 그림에서는 갈대가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림 속의 선동동자는 달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심사정은 달마를 우리가 알고 있는 긴 수염과 짙은 눈썹 그리고 휘날리는 옷자락을 하는 모습과 달리 왜 소년의 모습으로 표현하였을까? 여기서 보이는 달마를 선동동자로 표현하는 경우는 종전에는 볼 수 없는 심사정만의 달마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분석을 나타낸다. 


심사정은 당시의 화가들이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며 그리는 방법과는 달리 그 풍경이 가지고 있는 의미까지 화폭에 담았다. 그러므로 인물화 즉 도석화 속의 달마 또한 그 겉모습만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닌 달마의 내면에 침잠한 심리까지 표현하였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달마는 성인(聖人)이다. 그것도 많은 이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달마 자신은 자신의 나약함과 고민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심사정은 달마 또한 인간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달마의 마음속의 무의식적으로 꿈틀대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갈망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말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성인이라고 해 고민과 외로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성인(聖人)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를 심사정은 공간의 여백을 남겨둔 채 아주 간결하면서도 매우 부드러운 먹 선을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동양화의 특징이 바로 '여백의 미'이다. 중요한 소재만을 표현한 채 공간을 가득 채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공간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트이게 하며, 생각의 틈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서양화와는 매우 다르다. 서양화는 캔버스의 공간을 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알레고리를(Allegory) 쉽게 찾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동양화는 매우 간결하지만 그림의 알레고리를 찾는 데는 각 개인의 경험과 사고를 바탕으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에 있어 무엇이 더 좋고 더 나음은 없다. 그저 각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림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지두절로도해/심사정/28.5x13.4cm/종이에 수묵담채/개인소장

그림 출처:현재 심사정, 조선남종화의 탄생/이예성 저/돌베게/2014.

 

8C경 조선에서는 도석화(道釋畫)가 매우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도석화는 종교화 본래의 용도보다는 일상적인 용도 즉 감상용으로 그려지거나 병풍으로 제작되어 집 안의 장식이나 행사 시에 사용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들이 많았다.
 

심사정이 남긴 도석화는 현재 15점정도 되는데, 이는 아마도 주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위의 그림은 심사정의 지두화(指頭畵)이다. 심사정은 풍경화뿐 아니라 인물화도 지두화법으로 그렸는데 오히려 인물화에 지두화법을 더 즐겨 사용했다. 

 

이 그림은 손톱으로 매우 빠르게 그렸으며 먹물을 살짝 찍은 눈은 그윽하다. 그리고 달마가 먼 곳을 응시하는 얼굴은 붓으로 그린 것보다 달마의 내면을 더 심도 있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날카롭고 각진 달마의 가사는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물결은 여기저기 먹이 뭉쳐있다. 이러한 선들은 그림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선동의 헤진 옷과 신이 없는 맨발 그리고 달마의 휘날리는 헤진 옷과 맨발 그리고 어딘가를 응사하는 모습은 서로 닮아있다. 사색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뒤돌아보기도 하지만 자연을 이해한다는 더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사색을 통해 인간의 이해를 도모하며 더 크게는 자연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때로 우리들이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는 이유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자연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즉 발버둥 쳐도 소용없는 일에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자연의 만물을 이해하기 위해 주어진 사색의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선동과 달마는 사색을 통해 세상의 덧없음을 깨달았고, 심사정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았기에 그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후세에게 남겼듯 말이다. 


오늘 현재의 그림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색하는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더욱 즐길 것이고,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사랑과 이해라는 이름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고 말이다.

 

아트 에세이스트 C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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