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靈山 백두산에서 한민족의 번영을 염원하며

세계일보 조사위원들,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 맞아 백두산 탐방
이우춘 조사팀장 | wclee@segye.com | 입력 2019-08-06 08: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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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모습. 

 

[글·사진 이우춘 세계일보 조사팀장] 세계일보 조사국에서는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7월 16일부터 20일까지 여순의 관동법원과 감옥 그리고 환인과 집안의 고구려 유적지 마지막으로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白頭山)을 탐방했다. 조국통일의 정론지 세계일보가 민족정기를 발양하고 도의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세계일보 조사위원들의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매년 실시하는 역사탐방으로 올해 열 다섯 번째다. 특히 의미가 있었던 안중근 의사 생애의 시대상 그리고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성에대해 공유한다.


중국 대련공항에 1시간 남짓 거리의 여순 감옥을 찾은 탐방단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동양평화의 교란자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격살하고 수감됐던 안중근 의사와 신채호·이회영·박희광 등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해서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고 1910년 3월 26일 31세의 생을 마감했다.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불멸의 삶을 살다 간 안중근 의사의 시대 상황을 상기해 보자.

 

▲세계일보 조사위원 탐방단이 18일 백두산 비룡폭포 앞에서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끝자락 동아시아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유럽의 동쪽 점령은 시작됐다. 세계일주 항로를 개척하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정복한 서구 열강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혁명에 힘입어 부국강병책으로 지구 전역을 남김없이 분할하고 식민지화 하는데 혈안이 됐다. 근대문명화라는 미명아래 무역망을 만드는 수교와 개항 등 일련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이득과 군사력을 동원한 강압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19세기 중엽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마지막 끝자락 동아시아에서 열강은 첨예하게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시대


강제로 체결된 강화도 조약부터 미국·영국·독일·러시아·이태리·프랑스와 수교, 임오군란·갑신정변·방곡령 사건·갑오개혁, 청·일전쟁, 동학농민혁명·노비제 폐지·을미사변·단발령·아관파천·대한제국 수립, 러·일전쟁, 태프트·가쓰라 밀약, 을사늑약·헤이그 특사 파견·고종 퇴위·군대 해산·간도협약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척결까지 1분 1초도 바람 잘 날 없이 조선과 대한제국의 명운이 걸린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시대였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생애 동안 일제의 만행과 불의를 목도하면서 대한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한 거사를 오랫동안 모색하고 실행했다. 고종황제도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과 구본신참론(舊本新參論)으로 개혁하고자 했지만 결국 풍전등화 같던 나라의 운명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끝내 역사 속으로 사그라들고 만다.


탐방단은 감옥에서 5분 거리의 여순 관동법원에서 동양평화론 등 안중근 의사를 선양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여순일본관동법원구지’라는 현판이 걸린 관동법원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진출을 시도하면서 관동도독부 산하에 설치한 사법기구다. 관동법원은 도시개발로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세계일보가 민족정기 발양의 일환으로 중국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를 특집 보도하고,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을 위한 국민성금모금운동을 전개해 설립한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을 통해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 세계일보 조사위원 탐방단이 16일 안중근 의사가 재판 받았던 여순 관동법원 법정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일제 최초 수상을 척살했기 때문에 국사범으로 수용돼 특별 감시와 감호를 받았고 거사의 조력자 우덕순, 유동하, 조도선과 함께 수감 중에 여순 소재 관동법원에서 여섯 차례의 공판을 받았다.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나라 왕비를 죽였다. 불평등한 조약을 맺었고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았다. 의병과 수많은 선량한 백성들을 학살했다. 이토는 우리나라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해친 원흉이자, 죄인이다. 나는 그것을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이토를 처단했다”고 안중근 의사는 말하며 이토의 죄목 15가지를 법정에서 밝혔다.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 조마리아의 뜻에 따라 항소를 포기하고 옥중에서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의 집필을 시작했다. 자서전 ‘안응철 역사’는 탈고했지만 서문, 전감, 현상, 복선, 문답 등으로 구성될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의 원고만 전해지고 있다. 집필시간을 주겠다던 일제가 동양평화론의 내용이 두려워 1910년 3월 26일 전격 사형을 집행하면서 완성되지 못했다.

 

▲ 16일 안중근 의사가 재판 받았던 여순 관동법원 정문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뭇 달라진 북녘 주민과 군인들


압록강 월량도에서 첫날 밤을 묵은 탐방단은 이튿날 위화도를 따라 올라가 압록강 상류에서 유람선을 탔다. 강둑에 어미 황소와 송아지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은 예전과 같은데 자전거와 오토바이 그리고 승합차로 출근에 분주한 북녘 주민들과 고기잡이에 한창인 군인들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탐방단의 손 인사에 화답을 한다. 일상화된 남북미정상회담의 영향일까. 변화된 북녘의 모습이 뭔지 모를 미소를 머금게 한다.

 

#고구려의 기상과 숨결 졸본, 홀본, 흘승골성

짧은 유람을 마친 탐방단은 즐거운 마음으로 집안의 고구려 국내성에서 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릉 그리고 비문을 답사하고, 기원전 37년 건국 초창기 기상과 숨결이 느껴지는 졸본(卒本)으로 향했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卒本)은 광개토대왕릉 비문의 홀본(忽本), 삼국사기가 말하는 홀승골성, 위서의 흘승골성(紇升骨城)으로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 광개토대왕릉비에 따르면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東明聖王) 즉 시조 추모왕(始祖鄒牟王)이 혼강(渾江)을 낀 비옥한 땅에 터를 잡았다. 홀본서성산(忽本西城山)으로 홀본 서쪽의 성산이다.


졸본성은 환인현 동쪽에 있는 해발 820m 높이의 천혜의 요새에 돌을 쌓아 만든 산성이며, 북쪽·서쪽·남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산성 안에서 고구려 시대 유물이 2,000여 점 출토됐고 여러 개의 건물 터도 발굴됐다. 고구려는평지에 건설하는 평지성과 전시에 수비용으로 삼기 위해 산 위에 산성을 쌓는 2성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 첫 도읍지 졸본의 왕성 역시 2성 체제였는데, 평지성은 하고성자성(下古城子城), 전시의 수비용 산성은 흘승골성으로 보고 있다. 흘승골성의‘흘(紇)’의 ‘ㅎ’은 구개음화되면 ‘ㅅ’이 돼 ‘슬’이며, 현대어로 ‘수리’다. '수리'란 말은 어원적으로 고(高), 상(上), 봉(峰), 신(神)을 의미하는 고어(古語)이다. ‘승(升)’은 사이시옷(ㅅ)을 나타낸다. ‘골(骨)’은 ‘고을’을 뜻한다. 따라서 흘승골성의 ‘수릿’은 훈역한 고(高)이고, ‘고을’은 구려(句麗)로 음차돼 고구려성을 말하는 것이다.


탐방단은 절벽 틈 사이에 놓인 가파른 계단을 올라 정상에 다다랐다. 환인 시내와 환인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타깝게도 댐 물속에 고구려 시대 수많은 적석총과 성터 등 유적들이 잠겨 있다고 한다. 2004년 중국은 흘승골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만주족 설화에 기반한 오녀산성으로 부르고 있다.

 

▲17일 광개토대왕릉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변화무쌍 북백두, 서백두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 동서남북 네 가지 코스 가운데 이번 탐방은 길림성 연길에서 이도백하로 가는 북백두 코스와 천지의 압록강 발원지를 볼 수 있는 남백두 코스로 등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남백두 코스가 열리지 않아 부득이 송강하로 가는 서백두 코스로 대체하게 됐다.


#신비로운 자태 북백두


탐방 셋째 날 통일을 염원하며 먼저 북백두 코스로 향했다. 고구려 유적지가 많은 집안에서부터 국기 등 현수막 사용과 구호를 외치는 것이 금지다. 한민족을 의식한 동북공정의 일환이며 사드(THAAD) 보복으로 더 심해졌다. 여전히 북백두 천문봉 주위가 천지를 보려는 구름 인파로 북적인다. 한반도 산줄기가 뻗어나간 곳, 민족의 여명을 열고 반만년 역사를 함께한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의 신비로운 자태를 10여 분 간 감상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어 눈 깜짝할 사이 우박과 장대비가 천지와 탐방단을 휘감아 버렸다. 백두산은 우리나라 최고봉으로 구름과 운무로 인해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폭우 속에 온 몸이 젖어도 강렬한 통일의 기운을 받은 탐방단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비룡폭포 앞에 도달했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비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새하얀 포말에 감탄이 절로 난다.

 

▲17일 장수왕릉 앞에서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야속한 서백두 천지의 울타리


19일은 서백두로 향했다. 지천으로 핀 야생화 사이로 난 1,442계단을 올라 천지에 등정했다. 1964년에 발효된 ‘조·중 변계조약’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은 백두산 천지를 절반씩 나눴고 서백두는 5호 경계비가 표지석이다. 현재는 37호 경계비로 바뀌어 있고 옆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다. 북한과 중국 어느 쪽에서 설치했는지 모르지만 야속하게도 이제 북한 땅을 밟을 수 없다. 하산길에 고산화원과 금강대협곡에 들렀다. 1,800여종의 형형색색 들꽃이 장관이고 V자형 계곡 사이로 솟아난 천태만상의 부석들이 기묘하다.


#변화를 모르는 신의주


단동에서 마지막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단교(斷橋)에 올랐다. 단교 아래로 흐르는 압록강을 사이로 좌우로 나눠진 신의주와 단동의 모습은 경제발전 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신의주가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나 즐비하게 들어선 단동의 고층빌딩에 비하면 참으로 열악하고 더디다.


#천국에 울려 퍼질 대한독립


탐방단은 독립운동가들의 결연한 의지와 숭고한 삶으로 숙연해지는 여순, 고구려의 기상과 숨결이 느껴지는 집안과 환인 그리고 우리 민족의 영산으로 반만년 이상을 함께 한 백두산 정상에서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듣고 싶다던 온전한 대한독립 소리가 천국에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남북통일을 하루속히 성취해야겠다는 다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귀국길에 열강의 유무형의 대리전이 안중근 의사의 시대 이래 우리 땅에서 끝을 모르고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국제적 현실을 직시하며 멀고 먼 세계평화와 도의사회 구현의 길을 궁리해 본다.

 

▲17일 졸본성 아래 고구려시조비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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