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의 훈수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11-06 09: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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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은 인간이 신의 지위를 넘보면서 시작됐다.

 

다들 힘을 합쳐 위로 계속 올라가면 신이 거주하는 곳에 다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21세기 서울 잠실벌에도 드높은 건물이 들어서서 맑은 날에는 구름이 노닐고 있다. 

 

결국 인간의 오만은 신의 노여움을 샀다. 

 

괘씸한 놈들! 감히 신에게 도전하다니! 하지만 신은 인간보다 한 수 위가 아닌가? 신은 질병이나 천재지변으로 인간들에게 벌을 준 게 아니고 아주 간단한 방법을 썼다. 

 

언어를 다르게 해서 서로 말을 못 알아듣게 해버린 것이다. 

저기 벽돌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물동이를 들고 오고, 지금은 일하고 좀 있다 밥 먹자고 했는데 지금 밥 먹자는 줄 알아듣고, 너랑 나랑 친구지 했는데 싫다는 줄 알고 싸움이 난 식이다. 

신의 계략으로 언어가 달라져서 의사소통이 안 됐다. 힘을 합쳐야 일할 수 있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니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 

심지어 함께 지낼 수도 없게 됐다. 그래서 인간은 바벨탑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질병도 아니고 천재지변도 아니니 신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게 신의 계략이란 걸 알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인간은 서로를 불신한 채 뿔뿔이 지구 곳곳으로 흩어졌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신의 도움(?)으로 새로운 직종이 생겼다. 

서로 다른 언어를 소통해 주는 통역·번역 일이다. 

그리고 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좀 더 세련된 직종이 필요하게 됐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다보니 서로의 마음을 통역해 주는 상담가가 절실해졌다. 

이들은 심지어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신도 모르는 말들을 바로 그 당사자에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 
말이 문제다. 

다들 말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고 오해하고 심지어 자살한다. 

차라리 외국어라 못 알아들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다.

걱정해 주는 말은 참견이 되고 관심의 말은 간섭이 되고 좋아한다는 말은 집착이 된다.

이제는 얼굴을 보면서 하는 면대면 대화가 줄어들고 전화 통화도 귀찮고 문자로 소통하다 보니 상대방 마음을 파악하기 점점 더 힘들어졌다. 

문자는 고사하고 사진·그림으로만 의사를 전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다 남들 앞에 나서는 사람들은 말의 마술사가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일단 말을 잘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이 변제된다. 고려의 외교가 서희는 말 한마디 담판으로 거란군으로부터 영토를 지켰다.

가족관계부터 국제관계까지 말은 정말로 중요하다. 한편으로 공자가 경계한 ‘교언영색’은 말을 상당히 잘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다.

남을 등쳐먹는 사기꾼치고 잘 생기고 웃는 얼굴에 부드러운 말의 소유자이다. 

그래서 말을 잘 알아듣는 기술이 절실하다. 

판소리에서는 소리를 잘 듣고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을 귀명창이라고 한다. 

귀명창은 ‘귀가 명창’이라는 뜻으로, 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판소리 명창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귀명창이 좋은 소리꾼을 낳는다” 또는 “귀명창 있는 곳에 명창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 시대도 귀명창을 필요로 한다. 화목한 가정·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다. 

상대방의 의사를 잘 듣고 이해하고 반응하고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안녕을 위한 의사소통의 필살기이다. 

앵무새는 귀명창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31세에 죽은 앵무새 알렉스는 지능이 만 5세 아이 수준이었고 150여개의 단어를 구사했다. 

50여개의 사물 이름을 알고 그 사물들의 재료, 형태, 색깔을 묘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을 갖다 달라고 얘기할 수 있었으며 다른 물건을 가져다 주면 다시 부탁할 줄도 알았다. 앵무새로서는 천재급이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알렉스는 수십 가지의 동물 소리를 흉내내는 성대모사의 달인이기도 했다. 

죽기 마지막 날까지 건강했던 알렉스는 주인과 서로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내일 올거지? 내일 보자”는 대화까지 나눴다. 

이 정도면 반려앵무새 아닌가? 비결은 무엇일까? 

주인인 이레네 페퍼베르크는 1977년에 애완동물 가게에서 앵무새를 구입했다. 그리고는 평범한 앵무새였던 알렉스에게 특별한 교육을 했다. 

앵무새에게 직접 무엇을 가르친 게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특정 상황을 연기하고 앵무새 알렉스가 그것을 지켜보며 학습하게 했다. 학생이 답을 할 때 교사가 그 옳고 그름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하는 것을 항상 지켜보게 한 것이다. 

상황을 관찰하는 수업을 반복한 결과, 알렉스는 그저 따라하는 언어가 아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하게 됐다.

이레네의 실험실에서 논쟁이 벌어지면 종종 끼어들어서는, “나 지금 가야 해” 또는 “진정하라고!” 라고 훈수까지 뒀다. 

이레네는 앵무새들이 빽빽한 원시림에서 커다란 무리를 지어산다는 데 착안했다. 그런 생존적 환경에서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과학의 연구 결과는 동물 뿐 아니라 식물들도 활발한 의사소통을 한다고 말해준다. 

식물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화합물질로 서로를 일깨운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을 닮아서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모든 생명체가 직면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함께인 것이 혼자인 것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그래서 의사소통의 문제는 간절하다. 

통일의 계절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국내외 환경이 오랫동안 기다린 통일을 돕는 듯 하다. 

우리도 강대국이 되고 싶어 한 개층 씩 탑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그러다가 말이 안 통해서 다시금 삐걱대고 헐리고 세우고를 반복한다. 

삼국통일의 주인공 신라에는 언어의 달인 김춘추가 있었다. 신라는 그때그때 적절한 외교전략으로 통일을 이뤘다. 

말이 소통되려면 열심히 떠들고 충돌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탑을 세울지 어떻게 세울지 의논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5000년의 긴 역사 속에 답이 있다. 

앵무새 알렉스처럼 지켜보고 공부하고 서로에게 훈수 둘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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