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溫故創新] 서산에 해질 무렵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20-09-08 09: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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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어린 시절 노을을 좋아했다. 부지런하지 않아 해돋이를 보기는 힘들었지만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농촌에서나 도시에서나 해질 무렵은 아름답다. 

 

하늘 한 가운데의 태양은 무색인데 서쪽으로 사라지는 태양은 붉어서 인상적이다. 동그란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는 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할 일 다하고 수고한 해가 가는구나.’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그와 비슷할 거라고 느꼈다. 낙조를 볼 때마다 노년을 떠올리곤 했다. 

 

평화롭고 뿌듯한 마무리가 낙조 속에 녹아 있었다.

태양은 온 종일 열일을 한다. 특히 가을의 태양빛은 따갑다. 

 

들과 숲에서 익혀주어야 할 과실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일까? 세상에도 태양처럼 자신의 빛과 열로 많은 일을 하고 간 사람들이 있다. 

 

신화시대에 그들은 영웅이라 불리웠다. 동양에서는 영웅호걸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같은 종, 같은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상앙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 또한 자신의 빛과 열로 진(秦)나라를 바꿨다. 

 

왕의 심중을 간파해 강국의 정책을 썼고 망설이는 왕을 부추겨 개혁의 속도를 냈다. 

 

짧은 기간에 나라를 바꿔 놓은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거열형으로 마감하며 그의 시대는 끝난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은 상앙의 이야기를 기술하면서 그의 지략과 용기와 결단성을 알려 준다. 

 

동시에 그가 지닌 간교와 비정함도 빼놓지 않았다. 

 

진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폐단을 쓸어낸 인물이었지만 그 과정에는 가혹함이 따랐다.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는 비열한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앙의 시대는 빛났지만 낙조는 아름답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법망에 걸려서 목숨을 보존하기 힘들었고 자신이 속였던 이웃나라(사실은 모국이다)인 위나라 사람들의 내쳐짐으로 사지로 몰렸다. 

 

진나라의 반역자가 돼 죽은 그의 시신은 다시금 그가 고안한 거열형에 처해진다. 슬픈 낙조이다.

상앙의 활약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위나라 왕의 서자로 태어난 그는 영민한 인물이었고 모국에서 등용되지 못할 것을 알고 진나라로 망명하는 지혜도 있었다. 

 

그는 단숨에 진나라 왕의 마음을 얻었고 자신의 개혁정책을 소신 있게 펼쳤다. 확실한 결단과 추진력이 그의 장점이었다. 

 

그는 가구를 묶어 연대책임을 지워 백성들이 서로 범법행위를 밀고하도록 했다. 

 

자식이 둘 이상이면 분가해 생산력을 올리도록 했는데 어길 경우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이런 변법이 10년 동안 계속되니 기강은 잡혔지만 백성들의 불만과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몰락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급속함이었을까, 아량없음이었을까? 지나친 전체주의였을까? 태자가 법을 어기자 태자의 사부들을 대신 벌준 것이 문제였을까? 

 

강국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그는 태자였던 혜왕(惠王)이 왕위를 잇는 그 시점에 내쳐진다.

 

사마천은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타고난 성품이 잔인하고 덕이 없는 사람” 이었다고. 

 

하지만 영장류인 인간무리에서 누군가는 소위 ‘알파 수컷’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진나라의 구습을 바꾸어 합리적이고 효울적인 체계로 만든 상앙의 공적을 ‘부덕(不德)’이라는 한 마디로 덮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동물세계의 알파 수컷은 늑대 연구에서 유래했다. 

 

동물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ll)은 침팬지 무리의 알파 수컷을 관찰한 결과, 우리가 상상하는 무자비한 폭군이 아닌 치유자의 모습에 주목했다. 

 

알파는 최종의 중재자로 무리의 조화를 꾀하며 고통 받는 개체를 가장 따뜻하게 위로하는 존재다. 

 

온 몸의 털을 곤두세워 무리를 제압하는 알파를 떠올리는 우리에게 다소 의외의 모습이다. 

 

침팬지들은 고도의 정치적 술수를 행한다. 편가르기와 동맹과 반역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미국 영장류학자 질 프루에츠(Jill Pruetz)의 보고에 따르면 세네갈의 사바나에 사는 침팬지들의 알파 수컷이 젊은 수컷들의 맹렬한 공격으로 쫓겨나 5년여를 혼자 살았다고 한다. 

 

여러번 복귀를 시도했지만 가혹한 지배의 댓가인 양 그 알파는 결코 무리 속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마침내는 조직적인 공격을 받아 살해됐는데 무리들은 시체를 계속 학대하기까지 했다. 

 

마치 상앙에게 행해진 거열형을 떠올리게 한다. 상앙의 ‘태양’이었던 변법은 그렇게 끝이 나고 그는 자신이 고안한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상앙은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현명한 선비 조량(趙良)은 '시경'의 구절을 들어 그에게 이렇게 충고했었다. “인심을 얻는 사람은 일어나고, 인심을 잃는 사람은 망한다” 상앙에게 아름다운 노을(노년)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었으나 듣지 않았다. 

 

알파 수컷의 처참한 살해의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개혁과 합리의 이름으로 부덕(不德)을 가릴 수 있는가? 

 

가을의 청량한 낙조를 바라보며 한 때 빛났던 인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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