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와 포도

타인의 부당이득 지속되면 사회공동 합의 깨져
편집부 기자 | | 입력 2019-09-26 17: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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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는 한복을 입고 법전과 저울을 들고 있는 법과 정의의 여신이 서 있다. 

이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의 한국화 된 모습이다. 

디케는 율법의 여신 테미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계절의 여신들인 호라이 가운데 한 명이다. 호라이 여신들은 한 편으로는 식물의 생장을 주관하는 여신들인데, 다른 한 편으로는 사회적 질서 유지라는 도덕적인 역할을 한다.
 
인간 세상에서 잘못된 판결로 정의가 훼손되면 정의의 여신 디케는 그에 대한 복수로 재앙을 내린다. 그것은 아버지 제우스의 뜻이기도 하다.

아스트라이아(Astraea) 또는 유스티치아(Justitia)로 불리기도 하는 정의와 법의 여신은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데, 저울은 기준의 공평함을 상징하고, 칼은 정의의 실행에 따른 힘을 의미한다. 즉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한 제재이다. 그래서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Justitia’에서 생겨났다.
 
동양의 정의관은 어떨까?

스승 공자는 판단과 행위의 기준을 의(義)에 두었다. 그래서 군자(君子)의 행동은 반드시 해야 된다거나 하면 안된다는 생각, 주관에 치우치면 안된다고 했다. 

[논어(論語), 이인(里仁)] 정의의 여신 디케의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저울을 떠올리는 구절이다. 그래서 군자를 지향하는 선비들은 이 옳음(義)을 먼저 자신의 내면에서 추구했다. 

조선시대 남명 조식(1501~1572)의 일화가 그 예이다.

한평생 방울과 검을 몸에 지니고 산 것으로 유명한 그에게 방울은 자신의 마음을 깨우치는 경(敬)의 도구이고, 칼은 자신의 사사로움을 끊는 의(義)의 도구였다. 

남명의 시(詩)에는 칼날과 같은 기개를 잘 나타낸 것이 있다. “불 속 흰 칼날 뽑아내니 서리 같은 빛 달까지 치솟아” 사사로운 욕심을 물리치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결단의 마음이 ‘흰 칼날의 서리같은 빛남’에 서려있다. 

디케 여신의 오른 손에 들려진 칼날은 양심과 정의를 추구한 선인들의 생활 속에 녹아 있었다. 이러한 공정함과 단호함은 자연의 질서와 통한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ll)은 20년 이상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에서 30여 마리의 카푸친(꼬리감는 원숭이) 무리를 연구했다.
 
카푸친은 고양이만한 덩치에 뇌가 크고 영리한 원숭이로, 견과를 돌을 사용해 깨는 지능을 갖고 있다. 

프란스 드 발은 카푸친의 감정지능에 관련된 실험을 했는데, 불공정에 대한 반응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원숭이 두 마리를 철망으로 분리된 실험실에 나란히 앉힌 후 각각의 원숭이가 있는 방에 작은 돌을 떨어뜨린 후 돌을 돌려달라고 했다. 돌을 돌려주면 둘 다에게 오이 조각을 공평하게 줬다. 원숭이들은 만족스러워 하며 항상 돌을 돌려주고 오이를 받는 물물교환을 했다. 

그러다가 똑같은 행동을 한 두 원숭이 중 하나에게는 오이를 주고 다른 원숭이에게는 포도를 줬다. (포도가 더욱 가치있는 먹이었다) 그러자 오이를 받은 원숭이의 불만이 표출됐다. 

돌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돌을 밖으로 던지거나 심지어 오이 조각을 내버리기도 했다. 멀쩡한 먹이를 받지 않고 반항하는 행위는 경제적으로 볼 때 손해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의 ‘감정적 편견’이 엉뚱하고 이상한 행위를 하게도 할 수 있음을 보여줘, 경제원칙을 따르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 유형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의 존재를 파기해 버렸다.
 
왜 그들은 멀쩡한 오이를 내던졌을까? 오이 거부 행동의 출발점은 ‘시샘’이었다. 

원숭이들이 동료의 부당이득(포도)을 시샘한 것이다. 동물학자들은 이것을 1차 공정성으로 명명했다. 

인간사회는 카푸친보다 더 민감하다. 이렇게 타인의 부당이득이 거듭되고 지속되면 사회공동의 합의는 깨진다. 우리가 공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앞날을 고려하기 때문이고 함께 생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협력관계 유지의 필요성이 그 원인이다.

그리스 신화속의 법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어(Astraea)는 재판을 할 때 주관성을 버리겠다는 뜻으로 눈을 헝겊으로 가리고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있어서 사사로움을 버리겠다는 상징이다. 

이것은 꼭 해야 하고 저것은 결코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오이와 포도의 불공정함을 성토하고 ‘시샘’하는 사회적 울림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제 대법원 여신상의 눈에 헝겊을 두르고, 오른 손에는 검을 들려야 하지 않을까? 지속 가능한 정의와 합의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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