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mily’, 신성한 이데올로기

최문형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겸임교수
편집부 기자 | | 입력 2019-07-05 1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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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겸임교수

완벽한 가정을 꿈꾸었다. 그게 전부다. 신성한 가족을 위해 방해가 되고 문제가 되는 것은 모두 제거했다.

 

이렇게 노력해 소원을 이뤘는데 범죄자가 됐다. 완벽한 최고인 가정을 갖고 싶은 마음이 문제였다. 

 

이 여성은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어렵게 이룬 소중한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고. 하지만 이 사건은 연일 사회면을 차지하며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사람 이름이 붙은 ‘고유정 사건’이다. 

 

그녀는 첫 번째 결혼이 깨지고 아들의 양육권을 받았지만 재혼하게 되자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재혼한 남편과 살아간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현재 남편의 아들이 거슬렸다. 생모와 잘 살고 있는 아이를 키우겠다고 데려온 후 이 아이를 정리해 버린다. 

 

한숨 돌리고 평온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전남편이 아들의 면회권 행사로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니 (고유정 생각에는) 전남편이 ‘신성한 가족’에 걸림돌이 됐다. 결국 그녀는 잔인한 방법으로 이 걸림돌을 깨끗하게 제거한다. 그렇게 고유정은 완벽하고 신성한 가정을 꾸렸다. 

 

현재 가정에 위해가 될 수 있는 전남편과 의붓아들을 처리해 버리고 ‘The Family’를 이뤄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성가신 일은 좀 있었지만 말이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가정 안에서의 사랑을 인류애의 근원으로 봤다. (사진=픽사베이)

‘The Family’는 굳이 번역하자면 부부 중심의 핵가족인 ‘정상가족’이라고 하겠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인정해주는 가족의 ‘정답’이다. 이 가족을 유지하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헌신과 관용, 인내 등이다. 

 

주로 여성의 몫이었던 이 덕목들은 이제까지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비록 이 과정에서 홧병이 나고 불치병에 걸리면서 희생해 온 ‘어머니’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들에게 자의식이 생겨나고 자기 인생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The Family’는 위협받기 시작했다. 여성의 경제적 능력이 한 몫을 하기도 했다.

 

이혼과 재혼이 늘어나면서, 전통적 가치관이 설 자리가 좁아지면서 ‘families’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다. 비혼 1인 가족, 편모편부가족, 재혼복합가족 등이다.


이런 형태의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났다. 머릿속 이상은 ‘The Family’인데 현실은 ‘families’ 로 진행되고 있는 거다. 비록 ‘families’ 로 살지만 이웃에게는 ‘The Family’ 로 떳떳하게 남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초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가장 문제가 됐다. 깔끔하게 결혼세탁을 하고 ‘The Family’로 살려는 각종 방법이 도입됐다. 그것은 끔찍하게도 아동학대와 아동살해로 이어졌다. 

한 쪽에서는 출산율이 떨어져 문제라고 하는데 멀쩡하게 잘 태어난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한 켠에서 죽어가고 있다. ‘The Family’의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알려진 아동살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조선시대에 ‘열녀문’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엔 ‘효자문’이 있다. 둘 다 신성가족을 위해 억울하게 죽어간 넋을 기린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적 매력은 가정 안에서의 사랑을 인류애의 근원으로 봤다는 것이다. 

핵심인 인(仁)은 가장 친(親)한 양친(兩親)에의 효(孝)에서 시작한다. 맹자의 인간사랑은 가족 간 사랑의 확장이다. ‘이웃 아이를 내 아이처럼 여기고 이웃 노인을 내 노인처럼 여기는[幼吾幼 老吾老]’ (맹자, 양혜왕상)게 그 방법이다. 정말 쉽다. 자연스런 인간 감정의 흐름이다. 

그런데 이제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여기지 못하는 것은 놔두고라도 내 아이 조차도 학대와 살해에 방치해 둔다면 어찌될까? 거듭되는 가족 내 불행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사랑이 어디에 있기나 한가?

고유정은 확실히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잘못된 판단을 만들어낸 우리사회의 통념을 돌아볼 차례이다. 

예수는 간음하다 잡힌 막달라 마리아의 사건 속에서 ‘죄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다.(요한복음 8장) 모여든 성난 군중은 아무 말 못하고 각자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해산했다. 그들이 들은 소리는 무엇인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 (마태복음 5장) 이 아니었을까? 

고유정을 두둔하는 게 아니다. 

‘The Family’의 이데올로기 아래 있는 우리는 누구든 ‘고유정’이 될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성가족이라는 집착 아래 생명이 짓이겨지는 한국사회를 위한 처방은 어디에 있는가? ‘정상가족’에서 떨어져 나온 ‘families’를 보는 시각의 전환과 생명(아동)보호의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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