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낮잠과 ‘고도’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초빙교수
이효선 기자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05-27 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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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한번 잤다가 선생님의 노여움을 사서 두고두고 ‘논어(論語)’에 오명을 남긴 이가 있다. 

 

바로 공자의 제자 재여(宰予)다. 공자는 제자들의 성격에 맞춰 가르치고 작은 장점이라도 보이면 들어서 세워줬는데, 재여의 낮잠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 할 수가 없다. 내가 재여(宰予)에 대해서 꾸짖을 것이 있겠는가?” 

 

학생 시절 봄날 오후에 살살 졸면서 이 구절을 배우다가 ‘썩은 나무’란 말에 화들짝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보통 사람을 재목에 비유하곤 하는데 재여의 경우는 이미 썩어 버려서 내다 버릴 일만 남아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무 중에 대나무는 꺾이지 않는 기개를 상징한다. ‘시경(詩經)’에는 유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형인 군자(君子)를 대나무와 엮은 시가 있다. 

 

기수(淇水)에서 마악 자라나는 대나무의 의연한 모습을 군자에 비유한다.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꿋꿋해 아름다운 대나무는 씩씩하고 장중해 위엄있는 군자의 빛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대나무의 줄기는 곧고 마디는 뚜렷하다. 마디 사이는 속이 텅 비어있고 줄기는 세로로 쪼개진다. 잎은 언제나 푸르러 지조를 상징한다. 


대나무처럼 멋진 군자는 거저 되는 게 아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기간이 필요하다. 

 

뼈나 뿔이 좋은 도구가 되려면 먼저 칼과 도끼로 자르고 이후 줄과 대패로 갈아야 하며, 옥과 돌이 작품으로 나오려면 망치와 끌로 쪼고 난 후 모래와 돌로 연마한다. 

 

신속함과 정확성, 끈기와 정성이 들어가야 군자라는 훌륭한 인품과 자질이 닦여 나온다. 시간과 인내와 노력이 들어간 결과가 바로 군자이다. 연마된 군자는 만나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그의 인품이 발하는 빛은 세상을 저절로 밝혀 준다.


군자와 관련해 재미있는 기록이 하나 있다. 당시 사회상에 진절머리가 난 공자가 조국인 노(魯)나라를 떠나 바다에 뗏목을 띄우고 한반도에 와서 살기를 원한 구절이다. 하마터면 공자는 ‘보트피플(뗏목피플?)’이 될 뻔했다. 군자가 사는 나라를 사모한 ‘도덕적 망명자’로 말이다. 

 

중국의 옛 기록인 ‘산해경(山海經)’에도 우리 조상들인 ‘군자국(君子國)’사람들에 대해, ‘단정하게 옷을 입고 칼을 찼으며, 동물을 기르고 호랑이를 곁에 부리며, 양보를 잘해 싸우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당(唐)나라 임금 현종이 신라에 사신을 보낼 때에도, 신라를 ‘군자의 나라’로 일컬으니 신중하게 응대할 것을 당부했고, 성덕왕에게 보낸 국서(國書)에도 ‘신라의 문장과 예의법도[禮]와 음악[樂]이 군자다운 풍모를 지니고 있다’고 썼다. 군자의 전통은 고려를 거쳐 충절의 상징 정몽주를 정통으로 삼은 조선의 도학(道學)으로 이어졌다.


군자(君子)는 누구인가? 유학의 ‘영웅’이다. 

 

기독교의 영웅은 예수이고 이슬람교의 영웅은 마호메트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는 영웅들이 한무더기이다. 세계의 신화들에서 영웅이야기는 공통적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그들의 출생, 그들의 성장, 그들의 모험과 통과의례,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일정한 패턴을 지닌다. 영웅은 세상을 구하는 인물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은 혹독한 고난을 온 몸으로 겪어낸다. 

 

그들은 왜 그런 운명을 견디어 내야 할까? 자신이 아끼는 무언가의 대상을 위해서이다. 그 대상은 사랑하는 누군가일 수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일 수 도 있다. 

 

도전과 희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영웅들은 아끼는 대상을 위해 고생을 즐거움으로 버틴다. 유학의 영웅인 ‘군자’는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利]은 뒤로 두고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의로움[義]을 추구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 연극으로 세계인들의 호기심과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주인공 두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고도’라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전부다. 고도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관객들은 각자 자신의 고도를 상상한다. 그것은 신일 수도 구원일 수도, 삶의 의미일 수도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이 기다리는 ‘고도Godot’가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의 ‘Dieu’의 합성어의 약자라는 설도 있지만,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일축해 버렸다. 고도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면 아마도 영웅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공자라면 고도를 군자라고 단언했을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지도자로서의 군자를 기다려 왔다. 한 사람의 군자, 한 사람의 영웅을! 이 군자를 만인에게 일깨워 적용한 사람은 공자다. 

 

우리 각자는 군자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어떤 ‘고도’를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다. 제자 모두를 군자로 키우고 싶었던 공자는 재여의 낮잠에 불같이 화가 났다. “너는 군자가 될 수 없다, 너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너는 고도가 아니다)“ 이렇게 강한 말을 했다는 건 뒤집어 보면 재여를 아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각자는, 군자다, 영웅이다. 그리고 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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