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 한국 서원…다섯 명소 탐방기

등재 9개 서원 중 소수서원‧옥산서원 등 대구·경북 탐방기록
최영주 기자 | young0509@segyelocal.com | 입력 2020-08-12 10: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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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한 ‘도산서원(陶山書院)’ 전경이다.

 

[세계로컬타임즈 글·사진 최영주 기자] 현재 우리나라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원이 9개가 있다.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서원들은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시대에 맞게 변화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에 소수서원(1543년 건립) · 남계서원(1552년 건립) · 옥산서원(1573년 건립) · 도산서원(1574년 건립) · 필암서원(1590년 건립) · 도동서원(1605년 건립) · 병산서원(1613년 건립) · 무성서원(1615년 건립) · 돈암서원(1634년 건립)이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그 중, 대구·경북에 위치한 서원은 무려 5개나 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등재가 됐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등재 후 세계적 유산으로서 그 명맥과 가치를 이어가려면 유지보수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관심만큼 더 좋은 보존력은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경북에 위치한 5개 서원인 소수서원 · 옥산서원 ·  도산서원 · 도동서원 · 병산서원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려 한다.

 

▲ 풍기군수 주세붕이 건립한 백운동 서원으로 '백운동' 현판이 걸려있다. 이후 1550년 '소수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등재된 9개 서원 중 건립 년도가 제일 빠른 서원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소재한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사적 제55호)'이다.


‘사액’이란 임금이 서원의 이름을 지은 편액(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 일명 현판)을 내려주는 것을 말한다.


소수서원은 1542년(중종37)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고려말 유현(儒賢)인 회헌(晦軒) 안향(安珦1243~1306) 선생을 기리고자 안향이 어릴 때 공부하던 숙수사 터에 사당을 세워 위패를 모시고 영정을 봉안하고, 다음해에 학사를 건립해 백운동서원으로 창건했다.


안향 선생은 ‘도첨의 중찬’ 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주력을 다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이며 동방 신 유교의 시조이다.

 

▲ 소수서원 유생들이 유숙하던 일신재와 직방재가 소박한 모습이다.


소수서원의 주요 건물로는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강학당과 안향 선생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 유생들이 유숙하던 일신재와 직방재 · 지락재 · 학구재가 있으며, 제사용 그릇을 보관한 전사청 · 오늘날의 도서관과 같은 장서각 · 신재 주세붕이 창건한 정자인 경렴정 · 여섯분(회암 주희 · 회헌 안향 · 신재 주세붕 · 오리 이원익 · 한음 이덕형 · 미수 허목)의 초상을 봉안한 영정각과 물가 정자인 취한대 등이 있다.


소수서원은 일반 서원이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동쪽에 공부를 하는 강학공간이 있고 서쪽에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이 배치돼 있다.

명종 4년(1549)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나라에 요청을 해, 명종 5년(1550)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게 되고,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교육기관으로 4천여 명의 유생들이 배출해 냈다.

다음은 경주에 소재한 옥산서원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위치한 ‘옥산서원(玉山書院)’  전경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위치한 ‘옥산서원(玉山書院)’ 은 사적 제154호로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선조 5년(1572)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창건했다. 1574년 사액 서원이 됐다.


경내에는 정문인 역락문과 이언적의 위패를 모셔놓은 체인묘, 유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거나 서원 내의 여러 행사 때 사용하는 강당인 구인당이 있다.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실 ·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민구재와 은수재 · 이언적의 신도비를 모신 신도비각 ·  이언적의 문집 및 판본을 보관하던 경각·판각 등이 있다.

 

▲ 옥산서원 뒷편 신도비각에 모셔진 이언적의 신도비다. 


옥산서원은 공부하는 곳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묘당이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이다. 구인당의 정면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원래 이산해(李山海)의 글씨였으나, 1839년 불에 타버린 구인당을 새로 지으면서 김정희가 다시 썼다.


서원에는 김부식 원저 ‘삼국사기’ 완본 9책이 국보 제322-1호로 · 이언적의 수필고본이 보물 제586호로 · 1513년 간행된 활자본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이 보물 제524호로 · ‘해동명적(海東名蹟)’ 2책이 보물 제526호로 지정돼 있다. 

 

이언적이 퇴거해 수도하던 독락당이 서원에서 서북쪽으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있는데 보물 제413호로 지정돼 있다.


옥산서원이 함께 있는 경주 양동마을은 열린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10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데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전통적인 씨족마을의 입지와 건축의 전통에서 조선 시대 유교 사회를 탁월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 번째로 살펴볼 곳은 사적 제170호인 도산서원이다.

 

▲ 도산서원으로 올라가기 전 오른편에 도산서당이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한 ‘도산서원 陶山書院’은 건축물 배치형태로 볼 때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도산서당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이 직접 설계해 명종 16년(1561) 창건한 건물로 몸소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며, 도산서원은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1574)에 문인과 유림이 건립한 곳이다. 선조 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 현판을 사액했다.

 
영남유학의 총 본산인 도산서원은 출입문인 진도문과 서원의 중심이자 사액현판이 게시돼 있으며 다 함께 학문을 강론하던 중앙의 전교당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으로 배열돼 있다.

 

▲ 도산서원 대강당 격인 '전교당'에 '도산서원' 사액 현판이 걸려있다. 이날은 관광객들이 선비체험을 하고 있다. 


동·서로는 책을 보관하는 서고인 광명실이 있고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동재·서재가 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동편 도산서당건물을 ‘박약재(博約齋)’라 하고 서편 건물을 ‘홍의재(弘毅齋)’라 하며 동재 뒤편으로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자리하고 있다.


사당 건축물로는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와 각종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이 있는데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홍의재 뒤편에는 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상고직사가 있으며 서원 입구 왼쪽에는 퇴계선생이 직접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된 옥진각이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곳은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에 위치한 사적 제488호, 도동서원이다.

 

▲ 나무 본연의 모습을 지닌 도동서원 '중정당'에 '도동서원' 사액 현판이 걸려 있다.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선조 1년(1568년), 비슬산 기슭에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됐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 선조 37년(1604)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재창건하고 '보로동 서원(甫老洞書院)'이라 이름짓고 김굉필의 위패를 모셨다.

 

선조40년(1607) 왕이 직접 쓴 ‘도동서원(道東書院)’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됐으며 마을 이름도 도동리라 고쳐 불렀다.

 

▲ 소박한 모습의 도동서원 전경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조선 중기 전학후묘의 전형적 배치형식으로 돼 있으며 원내의 여러 행사 및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한 중정당과 강당의 후면에 김굉필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 있다.


유생들이 기거하던 거인재와 거의재, 팔각지붕을 한 2층 누각인 수월루를 지나 사주문인 환주문이 있다. 이 외에도 내삼문 · 장판각 · 고직사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병산서원을 살펴보자.

 

▲ 마당에서 바라본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된 '입교당'에 '병산서원' 사액 현판이 걸려 있다.


사적 제260호인 ‘병산사원(屛山書院)’은 광해군 5년(1613년)에 창건됐으며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의 위패를 모셨다.


본래 이 서원의 전신은 고려 말기, 풍산유씨의 교육기관으로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이었다. 이를 1572년에 유성룡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 것이다.


1607년 서애가 타계하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13년에 존덕사를 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했다. 철종 14년(1863년) 현재의 이름인 ‘병산’이라고 사액 받았다.

병산서원에는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해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돼 있다.

 

▲ 휘어진 나무의 모습 그대로 지어진 누각 '만대루'이다. 이곳은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자 강학 공간이다.

경내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기와집인 존덕사가 있고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된 입교당, 향사시 제관의 출입문으로 사용됐던 신문·제수를 장만해 보관한 전사청이 있다. 책판 및 유물을 보관하는 곳인 장판각과 유생이 기거하며 공부를 하던 동재·서재가 있다.


향사나 서원의 행사시 개회·폐회를 알리고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자 강학 공간으로 사용하던 만대루와 복례문, 고직사 등이 있다.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진 모양) 형태의 연못이 조성돼 있다.


다섯 군데 서원을 다녔다. 하지만 평소 관광지로만 찾아가 그냥 훑어만 보고 지나왔던 서원들이 달라 보였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의 서원이 표시된 지도이다. 소수서원 사료관에 비치돼 있다.

정조 때 문장가 저암(著菴) 유한준(1732~1811)이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 발문에 쓴 글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蓄之而非徒蓄也’가 생각난다.


‘알게 되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유홍준 교수가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 1권 머리말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쉽게 풀어 인용한 바 있다.


이 글귀에 많은 공감이 가는 5개 서원 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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