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영의 밑줄긋기] 내가 감각하는 현실과 마주하기

숭례문학당 강사
권선영 기자 | hjk301400@naver.com | 입력 2021-02-10 10: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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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영 숭례문학당 강사
코로나 우울. 지난 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자 많은 이들이 우울감이나 무력증을 호소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사람들은 반려식물을 들이거나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만한 것들을 찾으며 일상을 다스렸다. 도저히 버티기 힘들 때에는 정신의학과 문을 두드리며 적극적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프리랜서 강사인 나도 코로나 우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리 잡혀있던 일정들이 연기되다가 결국 취소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내게 주어진 잉여의 시간만큼 무기력감도 커져갔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누워 있거나 잠을 잤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내가 들었던 조언 중에 ‘뭐라도 해보지 그래?’라는 말이 가장 공허했다. 

내 삶에서 ‘일’이 사라지자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었다. 노동의 중요성을 다시 새겼고, 일하면서 내 삶을 전혀 돌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 외에는 나를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플랫폼이 자리를 잡으면서 다시 바빠졌고 나는 이전의 일상을 되찾았다. 동시에 또 찾아올지 모를 잉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계속했다. 

그러던 와중 동물권행동 카라가 “동물권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교사 연구진 16인과 함께 47종의 동물권 학습지도안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라인 제작 발표회를 열어 제작 배경을 밝히고 학습지도안의 구성과 활용법을 소개했다. 

학습지도안은 초등 1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학년별 학습과정에 따라 세분화했다. 또한 다양한 동물 이슈를 다루어 흥미로우면서도 생각을 심화시킬 수 있도록 교사용 지도안, 수업용 PPT, 학생용 활동지로 묶어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사들의 노고가 묻어났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신념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자료였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반려동물, 한국 개농장에 머물러 있는 나로선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카라의 온라인 제작 발표회는, 동물권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결과물 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주의자. 그들의 이야기에서 삶의 활력이 묻어났다. 무기력한 내가 가장 절실했던 활력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우울에 힘들어할 때도 놓지 않았던 것은 반려견과의 산책이었다. 실외배변 때문에 하루 3번 이상은 나가야 하는데, 몸이 아파도 꼭 데리고 다녀왔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바깥 공기를 마시며 몸을 움직였다. 생각해보니 오며가며 만난 반려견 보호자들과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힘든 와중에도 일상의 루틴은 잘 지키고 있다’며 격려하던 친구의 말도 이제야 떠오른다. 그나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의 연속’이었다.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서 소설가 박상영도 그러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한다. 설사 오늘 밤은 굶고 자지는 못할지언정, 그런다고 해서 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두려 한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 루틴을 좀 더 세분화하고 심화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블로그에 동물권에 대해 함께 공부하자는 글을 올렸다. 일명 ‘휴머니멀 프로젝트’. 한 달에 한 권 동물권 관련 책을 읽고 간단한 소감을 나누는 모임이다. 책은 다소 높은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장의 경험과 지성인의 사유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아는 것이 이 모임의 정체성이다. 

첫 책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멜라니 조이, 모멘토)다. 내 루틴을 지키며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 내가 감각하는 현실과 마주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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