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래비와 소르바스에게 물어보자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작가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10-11 13: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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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작가
‘질라래비 훨훨’은 아기의 양팔을 잡아 쭉 벌려 나비처럼 훨훨 춤추게 하는 동작이다. 

 

아기가 온 몸을 움직이게끔 자극해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자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 육아법인 단동십훈 중 마지막 10번째 동작이다.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아기가 기쁘고 즐겁게 맘껏 훨훨 꿈을 펼치라는 엄마의 축복어린 염원이 담긴 춤이다. 

단동십훈의 10가지 동작은 아이의 성장 단계에 따라 과학적으로 구성돼 있고 각각의 동작은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소설로 엮어져 나온 ‘질라래비 훨훨(다슬기, 2019)’은 태어날 때부터 용골돌기 미성숙으로 고공비행의 어려움을 겪는 소녀 쇠재두루미의 이야기다. 

질라래비라는 이름의 이 소녀 현학(玄學)이 어려움과 모험을 거쳐 의젓하게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름 때문일까. 이 소녀 현학은 날아오르기 보다는 온 동네를 쏘대며 춤추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철새인 질라래비는 몽골초원 알타이산 자락 검은 호수에 사는데 질라래비네 부족은 해마다 늦가을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따뜻한 북인도에 가야 한다. 

하지만 해발 7,000미터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것은 만만치 않아서 강풍 조드도 무섭지만 이들을 노리는 검독수리떼를 피해 모두가 안전하게 이동하는 게 문제다. 

이 철새집단을 이끌어 온 부족장인 질라래비의 할아버지는 부족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검독수리에게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부족의 역사를 기억하는 할머니는 고공비행이 어려운 막내손녀 질라래비와 함께 좀 더 쉬운 코스인 한반도를 택하고 진안 용담호로 날아온다. 

그곳에서 질라래비는 자신과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싸인다.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인 이 이야기는 말괄량이 소녀 현학 질라래비의 발랄한 매력과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의 정겨움과 포근함, 몽골초원의 서늘한 아름다움과 전라북도 진안고원의 투박하고 우직한 선의 멋이 어우러져 인간과 새, 자연물이 교감하는 채색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동물을 소재로 한 감동적 동화 중에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라는 별명이 붙은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바다출판사, 2000)’ 가 있다.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 북부로이동하던 갈매기 중 암컷 갈매기 켕가는 바다 속 기름에 오염돼 추락해 죽게 된다. 

우연히 만난 고양이에게 켕가는 자신이 죽더라도 새끼인 알을 먹지 말고 보호해 줄 것과 새끼를 길러 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하고 죽는다.
 
그렇게 고양이 소르바스는 졸지에 알에서 태어난 아기 갈매기의 엄마가 되고, 전혀 다른 종인 아기 갈매기를 키우느라 동분서주 전전긍긍한다. 

마을의 다른 지혜로운 고양이들의 도움으로 소르바스는 겨우겨우 아기갈매기를 키우기는 했지만, 이제 날기를 가르쳐서 갈매기 무리에게로 돌려보내야 하는 마지막 약속이 과제로 남는다. 

하지만 용감하고 지혜로운 이 고양이는 결국에는 산 미겔 성당 꼭대기에서 아기갈매기를 날려 떠나보내는 데 성공한다. 

이 동화는 갈매기 아기를 고양이가 아닌 갈매기로 키우느라 애쓰는 고양이 엄마의 육아기와 모험이 흥미진진 펼쳐진다. 

함부르크항구를 배경으로 새와 고양이의 촘촘한 사랑과 우정과 배려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는 애지중지 키운 아기갈매기를 자기 무리로 돌려보내는 엄마 고양이 소르바스의 헌신이 아름답다. 

먹는 것도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도 전혀 생소한 아기 갈매기를 다름 아닌 갈매기로 길러서 이제는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고양이의 모성은, 약속을 꼭 지키겠노라 다짐한 엄마갈매기와의 신의와 의리에 얽혀있다. 

성당 종탑에서 갈매기를 떠나보내며 조마조마 애태우는 고양이의 심정은 의연함과 공감의 표본이다. 

‘질라래비 훨훨’은 선천적 어려움을 갖고 태어난 소녀 현학 질라래비의 거침없는 자아찾기가 압권이다. 

나무와 돌들과 이야기 나누는, 자신의 문제를 한탄하지 않는 소녀에 주목하자. 

‘세상이 내 맘대로 안돌아가서 다행!’이라는 무한긍정 소녀의 자신감 충만 유전자는 동족을 위해 의연하게 희생한 할아버지 현학의 당당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포식자에게 자신을 거침없이 제물로 바치는 리더의 장엄함을 보라. 

두 편의 작품 모두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걸작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나서 자연에서 컸다. 

자연은 우리에게 생명을 살릴 것을, 다른 생명과 서로 살리며 살아갈 것을 늘 가르친다. 

강물도 바다도 바위도 숲도 모두 우리 스승이다. 

인류가 긴 세월을 거쳐 바라고 추구한 사랑과 진리와 정의도 자연에서 왔다. 

그래서 옛 현인들 또한 ‘어진 이는 물을 가까이하고 지혜로운 이는 산을 가까이 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11세기 중국 북송의 유학자인 장재(張載)는 ‘서명(西銘)’에서 “하늘과 땅은 나의 부모이고 온 백성은 동포이며 자연만물은 나의 짝” 이라고 했다. 

자연이든 사회든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의지해 산다. 그렇게 살아서 건강하다. 다른 존재는 나와 동떨어진 별개가 아니다.

쇠재두루미 질라래비는 나무와 바위와 물과 이야기하며 어울려 놀고, 고양이 소르바스는 아기 갈매기의 엄마노릇을 척척 해낼 수 있다.

가슴 속에 정치, 종교, 계급, 민족이 꽉차있으면 세상의 그 무엇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가슴 속을 텅 비워내어 물과 산에 귀를 갖다 대보라. 

모든 문제의 답이 거기에 있다. 

물과 산의 언어가 어렵다면, 그곳에서 사랑과 지혜를 터득한 몽골초원 현학 부족장인 질라래비의 할아버지와 함부르크 부두에 사는 갈매기 엄마인 고양이 소르바스에게 물어보자. 

지금 우리 한반도에게 필요한 사랑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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