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영의 밑줄긋기] ‘공고번호 250번’ 늙은 개 이야기

숭례문학당 강사 권선영
권선영 기자 | hjk301400@naver.com | 입력 2021-01-13 10: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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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영 강사

지난 12월, 포인핸드(유기동물 입양&실종 동물 찾기 앱)에서 10살로 추정되는 2.8kg 포메라니안 공고를 보게 됐다. 개가 유기된 장소는 상봉터미널 인근. 특이사항에 기재돼 있는 ‘고령·기력없음·비틀댐·양슬개골’이라는 건조한 표현이 ‘입양 가능성 제로’를 암시했다. 열악한 보호소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은 눈에 보듯 뻔했다.

 

댓글에는 개를 버린 사람에 대한 원망, 입양자가 나타나길 바라는 간절함, 도와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 혼재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매일 입양 여부를 확인했지만 늙은 개는 언제나 ‘공고중’이었다.


그 개를 다시 보게 된 것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다. 인스타그램을 훑다가 포인핸드에서 봤던 익숙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밑에는 ‘개가 죽더라도 따뜻한 집에서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에 보호소에서 꺼내와 임시보호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 달려있다. 

하루를 더 고민하고 나는 임시보호자에게 DM을 보내 입양 유무를 물었다. 그는 “아직 입양 전”이라면서, 개의 건강 상태를 자세히 알려줬다. “감기 기운이 조금 있고 외부적인 충격으로 인해 안압이 현저히 낮은 상태이며 시력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배변 때문에 학대를 받았는지,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오줌을 누지 않아 요도염 진단을 받았다”고도 했다. 

보내온 동영상에는 그 작은 개가 밥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노견. 성치 않은 몸에 눈마저 보이지 않지만 개는 말하고 있었다. ‘살고 싶다’고.

내 인스타그램 추천 피드에는 두터운 패딩을 입고 산책하거나 따뜻한 집안에서 배를 드러내며 자는 반려견과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동사해버린 유기견들, 학대 받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참혹한 동물들의 모습이 무작위로 섞여서 올라온다. 동물 학대하는 사진을 버젓이 오픈채팅방에 올리고 훈장처럼 전시하는 작태에 분노하며 청원을 부탁하는 글도 자주 보인다. 

보호소에서 얼어 죽은 개도, 그저 재미로 잔인하게 도살된 고양이도 한때는 생명력을 과시하며 어미의 젖을 힘차게 빨았고, 누군가의 반려동물로서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동물에 가해지는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성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세상을 비관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은 동물의 고통으로 이뤄져 있다. 옷·약·식량·화장품등 동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런 것들로 안락하고 쾌적함을 누린다. 그렇다면 동물의 고통을 책임질 의무도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면 가장 최소한으로, 덜 고통스럽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윤리적 소비는 이러한 ‘실천적 태도’를 내포한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이런 물음표가 자리한다. 당당하게 채식을 선언할 신념도, 선뜻 유기견을 구조할 용기도, 동물권 활동가로서의 열정도 없는 내게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쓴 소설가 하재영의 말에서 나는 답을 찾았다.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을지 결정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질문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응답하는 데에는 아무 자격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늙은 개 한 마리를 입양한다고 해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버려진 개들은 한파에 동사할 것이고 잔혹한 동물 학대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의 일부를 나눠 받은 늙은 개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터미널에서 더 이상 사람들 발에 채일 일도, 몸에 가해지는 외부적인 충격도 없다. 고통과 두려움에 떨지 않고 남은 시간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유기견 중 한 마리이던 ‘공고번호 250번’ 개는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다. 

유기견 미코를 구조했던 하재영은 미코와 함께 했던 시간 동안 “낙관도 비관도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숭고함에는 그저 ‘현재’만 있을 뿐이다.

포인핸드에 올라왔던 늙은 포메라니안의 특이사항에는 이런 문구도 있었다. 
“사람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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