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찌 마음 탓인가! 울타리 탓이지?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작가
편집부 기자 | | 입력 2019-09-06 15: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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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작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흔한 질문이다.

 

 하지만 달걀이 닭이 되고 닭이 달걀을 낳는 순환이 계속되니 어느 게 먼저인지 알기 어렵다.

 

 “사랑이 먼저인가, 정의가 먼저인가?” 이 또한 쉬운 질문이 아니다. 

 

 사랑을 따르면 정의가 울고 정의를 따르면 사랑이 우는 경우도 있으니까. 

 

 어찌보면 이 두 가지는 모순적이다. 동일한 경우에 병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중국 제(濟)나라의 고자(告子)라는 학자는 사랑[仁]과 떳떳함[義]을 아예 떼어놓고 생각했다. 


둘이 함께 해서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 버렸다. 고자는 사랑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고 떳떳함은 마음 밖에 있다고 했다. 특히 떳떳함의 근거는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외부 조건은 수시로 바뀌므로 떳떳함의 추구는 그때그때 수시로 변한다.

 

이 주장에 발끈한 것은 맹자다. 맹자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서 바뀌는 ‘옳음’과 ‘떳떳함’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장자가 (외부에) 있으니 그를 존경한다’는 고자의 생각을 반박한다. 

 

‘옳음’과 ‘떳떳함’ 또한 사랑[仁]과 마찬가지로 본래 내가 가진 마음과 관련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맹자는 ‘사랑은 나를 위주로 하므로 인(仁)은 내 안에 있고, 경(敬)은 어른을 위주로 하므로 의(義)는 바깥에 있다’고 한 고자 사상을 전면 부인한다. 그런데 고자처럼 의(義)를 외부의 것으로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우리들의 윤리와 도덕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과학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랜 진화의 시간을 거치면서 인간은 생존에 이로운 행위들을 터득하고 습득했다. 우리는 윤리적 명제나 도덕적 메시지가 신(神)이 하늘에서 뚝 떨어뜨려 준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또는 물질세계와는 전혀 관계없는 진리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이 보는 윤리적 명제들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그들은 도덕의 메시지를 인간의 뇌와 문화가 함께 만들어낸 산물로 본다. 

우리 개개인은 순간순간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게 돼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모든 선택들은 분류되며 특정한 선택들은 관습이나 법률들로 만들어진다. 

나아가 충분히 힘을 받으면 강제력이 더해져서 신의 명령이나 우주적 질서로 굳어진다. 그러니까 옳음, 떳떳함, 의로움 또한 인간 본성에 근거한 공공의지의 하나다.
 
현대과학은 맹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인간은 본성의 떳떳함의 요구에 따르고 이 하나하나의 결정과 선택이 모이면 공공의지가 된다. 

그렇게 공동체에 유리한 쪽의 의견이 자연스레 채택된다. 공동체가 살아야 개인도 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제도와 그 제도의 실행 문제는 또 어떤가? 실행과정에서 드러나는 제도의 문제점은 제도 자체에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다루는 개인에게 있는가? 

법과 제도는 필연적으로 울타리를 가진다. 그리고는 울타리 안과 밖을 가른다. 

법과 제도를 경험하는 각 개인은 이 울타리를 체험하게 돼있다. 울타리 밖의 경험은 아플 수 밖에 없으니 이 안에 있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고도의 술수를 지닌 사람들은 이 울타리를 적절히 활용한다. 법망이나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를 넓히고 울타리를 넘나든다. 떳떳함[義]이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고자의 추종자들이라면 이런 행위들은 당연하다. 그런데 순진하고 철저하게 울타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분명히 떳떳함을 내 안에 지닌, 맹자의 제자들일 것이다. 

그래서 엉성한 울타리든 촘촘한 울타리든 높든지 낮든지 간에 그들에게는 별반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묵묵히 옳음을 따라서 살아간다.

이렇게 마음 속 의(義)를 따라 한결같이 살고 있는 맹자 추종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일이 요즈음 일어났다. 

한 장관 후보자의 행적 문제이다. 그것도 울타리 지킴이 분야의 수장 문제이다. 

조선시대부터 맹자 DNA를 물려받은 백성들의 울화가 점점 커져가자, 신기한 방책이 발표되고 있다. 

이번 문제의 궁극적 원인은 애초에 잘못 만든 울타리의 문제이니 이것을 대폭 수리할 생각이란다. 

그러니까 울타리를 넘나든 사람들의 마음[내부]이 문제가 아니라 울타리[외부]가 문제란다. 

그래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 작정이라고 하니, 고자처럼 의(義)는 외부에 존재한다는 말과 딱 들어 맞는다. 

공공의지에 따르지 않은 문제의 책임이 그 당사자의 마음에 있다기 보다는 외부에 있다는 해석이다. 물론 제도 자체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해 제도를 수술하면 어떻게 될까? 

제도와 울타리를 지키는 떳떳함이 애초에 누군가의 마음 속에 없다면?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다.

고자에 대한 맹자의 분노가 충분히 이해된다. 의로움은 진정 내 마음과 몸 밖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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