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익명성 숨은 잔혹성…“악플 뿌리는 혐오‧차별”

표현의 자유 VS 사회적 폐해…“분열 조장, 정부 개입 필요” 주장도
김영식 기자 | ys97kim@naver.com | 입력 2019-11-13 14: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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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얼굴을 가린 익명성에 기댄 이른바 '악플'의 만행에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어두운 방 한 켠 자신의 PC로 남긴 누군가를 향한 악성 댓글과 밝은 대낮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무심코 건넨 혐오‧차별성 발언 등등...  


자신의 실제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며 항변하는 그들 앞에서 과연 무엇이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폐해의 경계를 갈랐다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인간은 태생적으로 누구나 수치심이란 것을 갖고 있어 부정적 의견을 표출할 때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길 꺼리고, ‘아차’ 싶은 상황에 마주하게 되면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기 마련이다.


◆ “표현의 자유와 혐오·차별 영역 명확히 구분돼야”


이제 머나먼 과거의 일로 치부돼버린 최진실 사건부터 최근 설리 자살 사건까지 특히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의 희생자로 하나둘 스러져가자 매번 그랬듯 또 다시 ‘정기적(?)’ 논란이 일고 있다.


인터넷 공간의 더럽혀진 현 상황을 직시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거나 법적 처벌요건을 강화한 ‘새로운 법의 신설’, 그리고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 플랫폼 사업자들의 자율 규제 강화 등등 익명성에 드러누운 악성 댓글러들에게 무엇인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자칫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로 여전히 조심스러우며 보수적인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을 통해 이 같은 이유를 대기도 했다.


최근 세부적 논의 진전은 분명히 있으나,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마치 데자뷰 같은 감각에선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온라인 상 악플의 양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양적인 면에서는 폭증했으며, 질적 측면에서도 매우 잔혹해졌다.


언급하고 싶지는 않으나 실제 고인이 된 설리의 경우 죽어서조차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근본적 원인을 하루 빨리 찾아 정확한 분석을 내놓고 이에 따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신속성’이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이유다.


선진국조차 부러워하는 ‘촛불혁명’ 등을 일궈낸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민주주의 정착’이란 명제는 영원한 시대적 과제임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일정 수준 도달했다는 의견들도 나오는 모습이다.


이런 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싸워왔고, 이는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예술이나 과학 등 일부 영역에서는 표현의 기준을 어떤 수준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진행 중이며,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조차 명확한 기준점을 알지 못한다.


◆ 민주주의 성숙…‘자유-방종 경계’ 모호해져


하지만 민주주의 발전‧성숙기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시간 경과에 따라 ‘표현의 자유’가 점차 강화돼 왔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자유가 강화된 반면, 필연적으로 방종과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이는 최근 사회적 폐해의 양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표현’으로 포장된 말과 글의 횡포가 도를 넘었으며, 이는 아무런 죄 없는 소중한 생명을 빼앗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표현의 자유’란 명확한 기준 설정에 대한 일정 정도의 국가 개입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성차별이나 인격모독성 댓글‧발언 등이 문제가 돼 공권력 조사에 임한 일부 사람들이 내뱉는 1순위 방패막이 바로 ‘표현의 자유’다.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그동안 고스란히 지켜내온 ‘표현의 자유’에서 이제부터는 ‘혐오‧차별’의 영역만큼은 반드시 걷어내야 한다.


마치 남성‧여성을 벌레(蟲)에 빗대거나, 위안부 강제동원 등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등 일상 속에서 혐오‧차별을 조장하는 언행은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상 구별 가능한 부분으로, 반드시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부터 걸러내야 한다.


결국 시민 개개인 스스로 자신의 일상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과 행동에 혐오‧차별적 부분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고 이를 개선해나갈 때, 익명성에 기댄 악플러들의 양심도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과연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성찰 뒤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학계‧전문가는 악플에 따른 사회적 폐해 최소화를 위한 예방교육 강화 등에 나서야 한다.


언론은 ‘선정적 기사 제목’ 경쟁을 그만두고 선플달기 캠페인 등 건전한 여론 조성에 역할을 해야 하며, 최근 포털사들의 근절책 마련을 계기로 기업 역시 사회적 책임의 측면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는 등 관점의 전환도 동반돼야 한다.


이처럼 전 사회적인 변화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폐해’ 사이 불명확한 경계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때만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악플에 따른 사회적 희생’이란 난제를 미래 세대에 넘겨주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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