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흙과 땅, 어머니의 살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08-23 16: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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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모든 것이 땅 문제다.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흙이다. 그 안에 답이 있다.

 

이론, 이념, 사상은 그 다음 문제다. 

 

그 유명한 프랑스혁명도 땅의 소출을 누리지 못한 굶는 사람들의 봉기였다.

 

총들고 배타고 바다를 누비며 남의 땅을 노린 자들도 흙에서 나는 것들을 노린 행위였다. 어머니의 젖가슴과 자궁 같은 땅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살육이 도처에서 일어난 것이 역사다. 

 

영화 ‘봉오동전투’ 이야기도 땅에서 시작해 흙으로 끝난다. 지리를 알려주고 희생되는 아이 이야기에서 시작해 땅의 높은 곳에서 흙을 떠나 보내며 끝이 난다. 

 

전투에 이기고 태극기로 옹기종기 모인 이 땅의 육신과 영혼들을 바람에 실어 고향으로 보내면서, 홍범도 장군(최민식 분)은 다음 땅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청산리’다! 


그 땅의 이야기가 다시 쓰여질 것이다. 바람에 날아간 이들은 이 땅의 거름이 됐고 날려 보낸 손길들 또한 흙이 됐다. 수많은 흙과 흙이 모여서 다시금 이 ‘땅’을 되찾았다. 땅에서 나온 흙들은 땅을 그리며 땅을 되찾으려 총이 됐다. 땅의 일부를 처분한 돈이 총을 살 자본이 됐다. 그 자본을 지어 나르느라 수많은 이들이 흙으로 돌아갔다. 

‘봉오동전투’는 흙의 이야기라 울림이 있다. 감동이 있다. 애초에 나라를 빼앗긴 건 흙과 별 관계없던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흙과 땅은 별 중요성이 없는지라 땅을 빼앗긴 결과가 무엇인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땅과 흙에 관계없이 다른 방법으로 먹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땅에 사는 이들에게는 이 아픔과 상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 속 장하(류준렬 분)의 모친이 일찍 돌아가시고 장하의 누이 또한 어린 나이에 스러지는 것은 우리가 땅을 철저히 유린당한 것을 의미한다. 어머니와 어머니가 될 여성의 상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일어서는 백성(농민)과 총을 낳는다. ‘어제의 농민이 오늘의 독립군이 된다’는 해철(유해진 분)의 말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여성을 지키는 데 혼신을 다한다. 영화 속 소녀, 춘희의 존재는 되찾을 땅과 흙을 상징한다. 그녀를 일본군의 겁탈과 능욕에서 지키는 장면은 곳곳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녀는 되찾아야 할 땅(조국)을 상징하기에! ‘봉오동전투’를 남성 코드로만 읽으면 부족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여성과 어머니의 상징성을 많이 가졌다. 폭포, 계곡, 협곡, 능선 등 모두 여성성의 상징이다. 능선과 폭포를 넘고 넘어 ‘죽음의 계곡’으로 적을 유인해 대승을 거두는 장면을 보면 안다. 일제 강점기 하의 우리는 하늘에 의해 버림받았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하지만 땅만은 빼앗길 수 없었고 땅 또한 자식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믿음을 갖고 흙에서 살던 많은 백성들은 총을 들었고 처연하게 다시금 어머니 품인 흙으로 돌아갔다. 이제 당시의 일들을 놓고 우리가 서로 논박할 게 무엇이 있을까? 땅과 흙에 속했던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유로 협곡을 넘어 북으로 건너갔든지, 아니면 바다를 건너 섬으로 건너갔든지 간에 그것이 왜 그 흙들의 잘못인가? 왜 그들의 죄인가? 

윗사람에게는 물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아랫사람에게는 그것이 없다. 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된 아이는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쳤고, 철든 극소수는 원수를 갚고 집안을 일으키려 했고 대다수는 그저 살기에 급급했다. 고아들의 행동에 대해 일일이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죄라면 부모를 잘못 만난 운명이 아니던가! 부모는 또 어떤가? 부모가 잘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못난 부모를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 또한 하나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간에 용서를 구하고 사죄하고 이해해야 한다. 콩가루 집안이 되면 신나는 건 여기저기서 다시금 우리의 땅과 흙을 노리는 자들 뿐이다. 

흙은 정말이지 만물을 품고 있다. 작은 세균과 바이러스, 미생물, 이끼, 새의 깃털, 굼벵이 시체, 썩은 이파리와 뿌리, 떨어진 각종 열매, 별별 종류의 동물 시체와 인간의 유해까지, 땅과 흙에는 없는 것이 없다. 

역사도 실은 땅의 역사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현장으로 가서 그 흙에다 물어 본다. 냄새를 맡고 그 땅의 돌멩이와 식물들에게 귀를 기울여 본다. 땅과 흙은 우리에게 많은 걸 일러 준다. 

땅이 병들지 않으면 앞날이 있다. 일본은 땅이 힘든 나라다. 땅이 흔들려서 딛고 살기 힘들고 게다가 방사능으로 오염까지 됐다. 일찍이 남의 땅을 그리 짓밟은 탓일까? 하지만 우리 땅은 멀쩡하다. 많은 한과 인고를 품었지만 그래서 단단하다. 

우리 흙들은 그렇게 후손들을 보듬어 꼭 끌어안고 있다. 그래서 일찍이 우리 조상 해월 최시형 선생은 땅을 단순히 어머니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살’ 로 소중히 여겼다.

봉오동에서 날아온 흙들이, 청산리에서 실려온 흙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니 하늘이 어쨌고 기후가 어쨌고 당시 백성들이 어쨌고 하는 이야길랑 이제 놓아두자. 

한반도 곳곳에서 숨 쉬며 흐뭇해하는 흙들을 보자. 그 흙들이 언제든 여유롭게 이 땅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처럼 흙이 될 우리가 애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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