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된 중대재해법…“누구를 위한 법인가”

‘손질’ 통과에 노사 모두 반발…보완입법 꾸준히 거론
김영식 기자 | ys97kim@naver.com | 입력 2021-01-19 14: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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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64, 반대 44, 기권 58표로 통과되고 있다.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쳤을 때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중대재해법’이 최근 오랜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법안 제정과 관련, 여야 합의를 통해 정치권에서 제안한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이라는 근본적 취지에는 노사 모두 공감했으나 내용 측면에서 부실함을 드러내며 양측 모두 반발하고 있다.

정부 원안 변경으로 핵심 내용이 빠졌다며 노동계가 불만을 드러낸 가운데 재계 역시 정상적 경영활동 수행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등의 이유로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는 일각의 불만과 함께 법 시행 전부터 이미 누더기가 돼버린 중대재해법에 대한 보완입법의 필요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는 이유다. 

법안 발의의 계기가 된 것은 최근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와 태안화력 김용균씨 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구의역 김군 사고 등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법 취지와는 달리 이번 법 시행만으로는 원청이나 사업주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선량한 이웃들인 수많은 산업재해 사상자가 매년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시민들의 안전의식은 높아졌으나 정작 정치권의 수용도가 낮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기업 입장에서도 과도한 처벌 규정을 맹비난하며 일각에선 아예 사업장을 해외로 뺄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이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여당에서는 이미 법 시행 이전 ‘대놓고’ 보완입법의 가능성을 거론하며 ‘누더기화’하고 있다. 앞선 이른바 ‘전동킥보드법 개정 논란’과 맞물려 국회 숙의의 노력‧태도 자체에 의구심을 표하는 시선도 크게 늘어나는 양상이다.

노동계 vs 경영계 충돌사회적 갈등 심화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사업자 처벌 과도 


재계‧노동계 등에 따르면 이번에 제정된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를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와 시설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했다. 다만 처벌 내용은 동일하다. 


특히 사업자의 안전관리 부실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서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법인‧기관의 경우 50억 원 이하 벌금형을 부과한다. 


다수 노동자가 다치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인‧기관은 10억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이번 제정법에서는 중대산업재해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다. 그러나 하청을 받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원청업체가 법 적용 대상이라면 원청업체의 경영자 등은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중대재해를 유발한 사업주‧법인이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는 경우 최대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토록 못 박았다. 


법안은 공포 1년 후 시행된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시행 후 2년간 유예기간을 두면서 법안 공포일로부터 3년 동안 적용 배제된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두고 이제부터 노동자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기업의 일체 행위는 ‘기업범죄’임을 명확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그동안 기업의 안전관리 소홀로 각종 재해가 발생했음에도 처벌할 수 없는 법 제도로 오히려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친 노동자 잘못으로 취급돼왔던 암묵적 방관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법 통과 전 양대노총 위원장들이 고 김용균씨 어머니 등이 참여한 중대재해법 통과를 촉구하는 단식 농성장을 찾아 위로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노동계는 원안에서 크게 후퇴한 ‘반쪽짜리’ 법안에 그쳤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자 제외와 50인 이하 사업장 3년 유예 방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발생한 전체 산업재해(10만2,305건) 가운데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8만122건, 78.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원안에는 공포된지 6개월 후부터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일괄 적용하도록 규정됐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 수 역시 전체의 60%, 노동자도 약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의 공식적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은 가운데 결국 법 취지의 핵심이 빠진 ‘반쪽’에 그쳤다는 게 노동계 불만이다. 


이와 관련, 앞서 민주노총은 업체 쪼개기 등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들은 “사업장 규모 축소를 위해 일부러 쪼개는 업체가 속속 나타날 것”이라며 “산재가 발생해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피해자만 꾸준히 나오는 이전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법 제정의 계기가 된 이천 화재 등 세 번의 사고에 대한 적극적 책임 추궁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번 법안은 처벌대상에서 말하는 ‘경영책임자’를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이사’로 선을 그었다. 그간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대표이사 및 안전담당이사’ 규정이 외면받은 셈이다. 결국 둘 중 한 사람만 처벌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줌으로써 ‘꼬리자르기’ 가능성을 자초했다. 


공무원과 발주처도 책임에서 자유롭다. 공무원은 인‧허가 감독 행위와 중대재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발주는 ‘도급’이란 개념에 포섭돼 법안에 넣는다 해도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나 김용균 씨 사고, 구의역 김군 사고 등에 관련된 충남도‧서부발전이나 서울시·SH 등 주요 발주처인 지방자치단체‧공기업 책임자 처벌은 물 건너간 셈이 된다. 


지난 이천 화재 참사는 발주처가 무리하게 공시기간 단축을 요구한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으나 관계자 처벌은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초 법안 취지 자체 무색해져

과도한 처벌해외로 떠날 수도 


이런 가운데 같은 법 제정을 두고 정반대의 논리를 앞세워 경영계도 반발하고 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재해 책임이 강하게 주어진 상황에서 중대재해법에 따른 또 다른 처벌은 이중처벌이라는 취지다.


특히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는 사업주를 산업재해 처벌할 경우 경영활동 수행 자체가 위축돼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특히 노동자 사망시 ‘1년 이상 징역’ 처벌 조항도 가혹하다는 호소가 나온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국내 기업 654곳을 대상으로 중대재해법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물은 결과 90.9%가 반대하기도 했다. 


또한 이중처벌 논란의 불똥은 교육계로도 번졌다. 이 법 적용대상에 학교도 포함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최근 결의서를 채택하고 법안 재고를 요구했다. 학교 특수성을 감안해 학교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의회는 최근 발표한 결의문에서 “학교장의 경우 교육시설법 등 책무와 처벌이 규정돼 있는데 중대재해법까지 적용할 경우 이중처벌을 받는 것”이라며 “공립학교 학교장은 교육감으로부터, 사립학교 학교장은 학교법인으로부터 각각 권한을 위임받아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라 적용대상에 포함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경영계의 중대재해법 관련 입법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기업들의 과중한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속된 가운데 특히 건설업계는 공사중단 등 생존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최근 입장문에서 “건설업계를 비롯한 전 산업계가 중대재해법 제정을 우려해 입법 중단을 호소했음에도 법이 통과된 데 대해 유감스럽고 실망스럽다”고 했다.


이어 “중대재해법은 헌법‧형사법 등에 명시된 과잉금지‧명확성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이라면서 “특히 사망사고 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에 처하거나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 등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는 기업별로 이미 수많은 건설현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회사 대표 등이 현실적으로 안전 문제를 일일이 챙기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2019년 시공능력평가 10위 내 건설사의 현장 수는 해외(67개)를 포함해 평균 270개에 달했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중대재해법 제정을 둘러싼 기업 측 우려를 5가지로 요약‧발표했다. ▲하청에서 발생한 재해를 원청만 처벌 ▲국내 중소기업 수주 대폭 감소 ▲중대재해 발생시 전문성 있는 근로감독관 대신 경찰이 수사 ▲광범위하고 모호한 준수의무 ▲기업의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이 그것이다.

 

오랜 숙의 거친 중대재해법

땜질 행태 정치권이 더 키워 


‘노동자 안전확보’를 기치로 내건 중대재해법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대의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 이전부터 땜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부터 나오는 모양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랜 기간 논의된 사안이라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란 신뢰에도 입법 책임자인 정치권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안이한 정치권 입법 행태가 땜질식 누더기 법안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앞서 ‘전동킥보드’ 관련 법안도 안전문제를 우려한 여론에 부딪치자 국회는 개정안을 ‘뚝딱’ 만들어냈다. 국민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당장 나왔다. 특히 입법 초기 충분히 예상가능했음에도 의원 개개인의 법안을 다루는 성의 자체가 부족한 데 따른 결과 아니냐는 뼈아픈 지적이 쏟아졌다. 


중대재해법 관련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이미 경영계는 보완입법안을 만들어 제출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도 완전히 다른 이유긴 하지만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은 같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중대재해법 관련 “부족하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앞으로 계속 보완·개선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당 대표가 나서 보완입법을 요구한 셈이다.


한 쪽에서는 ‘산재 사망국 1위 대한민국’을,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사업활동 불가능’ 등 각각 극단적 입장만을 밝히며 충돌하는 상황에서 법 시행 이전 끊임없는 재입법 논의는 깊은 사회적 갈등만을 장기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선 전동킥보드법 사례와 마찬가지로 사전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임에도 이같은 극단적 간격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 최초 법안에 담을 수는 없었는지 정치권 행태에 의구심이 깊어지는 이유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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