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말 ‘잘’ 들으면 ‘안’ 되는 ‘이상한’ 사회

“고 김용균, 매뉴얼 충실해 사망”…‘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참사 투영
김영식 기자 | ys97kim@naver.com | 입력 2019-08-20 15: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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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 특조위 위원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소재 정부청사에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2014년 4월 16일 당시 침몰해가던 세월호에 울려퍼진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의 여운이 여전히 국민의 귓전에 맴도는 가운데, ‘말을 잘 들어 목숨까지 잃고만’ 우리 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겨울밤 홀로 태안발전소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작업을 하다가 기계에 몸이 끼여 숨진 ‘24살 청년’ 사망사건의 진상조사 결과가 사고 발생 8개월 만에 발표됐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19일 고(故) 김용균 씨 사망사건에 대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던 발전소 측의 초반 해명을 뒤집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 ‘김용균 사망사고’ 특조위 조사결과 발표 ‘파장’


특조위가 지목한 김 씨 사망의 근본적 원인은 전력산업의 원·하청 구조, 즉 ‘위험의 외주화’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개인의 실수가 아닌’ 노동자 안전을 뒷전으로 한 채 비용절감만을 추구한 원‧하청 간 왜곡된 구조적 요인이 이번 사건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날 특조위 간사인 권영국 변호사는 “김용균 씨는 작업 지시 또는 근무 수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다”라며 “특조위 조사에 따르면 작업 지시를 너무나 충실히 지켰기 때문에 죽었다”고 말했다.


사고발생 당시 서부발전 관계자는 하청업체와의 계약서상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김 씨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발언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조위 조사 결과 이 발언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특조위 조사 결과 한국발전기술 업무지침에는 컨베이어벨트가 가동 중일 때도 낙탄 처리작업을 하도록 명시됐으며, 이상이 의심되는 현장·기계를 촬영해 보고하는 절차까지 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김 씨는 회사가 시키는 말을 과도하게 ‘잘’ 듣다가 꽃다운 목숨까지 잃었다. 20대 청년의 허망한 죽음에도 그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 유족 가슴은 피멍으로 물들었다.


이날 특조위 발표 이후 김 씨 어머니인 김미숙 씨는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혼자 일하다가 죽은 건데 기업에선 용균이가 잘못해 죽었다고 한 데 대한 억울함이 컸다”며 “이제야 아들이 누명을 벗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쯤 되니 이제 5년도 훌쩍 지난 세월호 참사가 겹쳐 떠오른다. 무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에 여전히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자세한 묘사는 생략한다.


다만 배가 기울어가는, 탈출을 위한 일각을 다투는 와중에 ‘가만히 있으라’는 100분 간의 선내방송을 듣고 정말로 ‘가만히만 있었던’ 말 잘 듣는 학생들이 연상되는 건 왜일까.


전 사회적 안전 시스템의 구조적 왜곡, 탐욕에 사로잡힌 지시자들, 말 잘 듣는 피해자들, 이유조차 모른 채 고통받는 유족들까지 너무나도 비슷한 양상으로 다가온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선박 관계자의 말 그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말하면 말하는 대로 잘 듣고 따랐을 뿐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만을 남기는 이상한 사회가 돼버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안전불감증’이란 말은 끝없이 되풀이됐음에도 인재(人災)로 판명된 사고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반짝’ 관심이 집중됐다가 곧 다시 사그라드는 현실은 참으로 오래 됐다.


점차 여물어가는 우리나라 시민의식 수준만큼 이제 ‘안전’ 문제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성숙한 태도도 사회적으로 갖출 때가 됐다. 매뉴얼을 잘 지키면, 관리자 말을 잘 들으면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그런 행복한 사회가 하루라도 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김 씨 어머니의 “용균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이번 호소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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