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동과 무사안일(伏地不動 無事安逸)

유재문 변호사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10-23 09: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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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문 변호사 
“2015년 8월 4일 수색작전 도중 저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사건으로 인하여 멀쩡하던 두다리를 절단하고 양쪽 고막이 파열되고 오른쪽 엉덩이가 화상 및 함몰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후 저는 총 21차례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1년 넘게 병원생활을 하고 두 다리에는 의족을 낀 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생략)”

이는 지난달 17일 ‘북한 목함지뢰 도발사건. 저의 명예를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으로 하재헌 예비역 중사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린 청원내용이다.

하 중사는 목함지뢰 사고로 인해 2019년 2월경 전역 후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신청을 했으나 ‘전상’군경이 아닌 ‘공상’ 군경의 통보를 받자, “다리 잃고 남은 것은 명예뿐인데 명예마저 빼앗아 가지 마세요”라고 호소하며 ‘전상’군경으로 인정해 달라며 청원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명예가 아닌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냐”며 하 중사의 국민청원 의도를 의심한 사람도 있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는 ‘전상군경(戰傷軍警)’은 군인이나 경찰공무원으로서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직무수행 중 상이를 입고 전역하거나 퇴직한 사람, ‘공상군경(公傷軍警)’은 군인이나 경찰·소방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를 입고 전역하거나 퇴직한 사람으로 정의해 양자를 구분하고 있다. 

다만 위 법령 보상규정에 따르면 전상군경에게는 전상수당만 추가로 지급할 뿐 나머지 보상부분에서는 전상군경과 공상군경은 동일한 기준에 의해 예우를 하고 있어 일부 의심의 우려와 달리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청원했다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2일, 1979년 소위로 임관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헬기 조종사로 유명하고, 2006년 유방암 수술 이후 군의 부당한 전역조치에 맞서 소송을 통해 2008년 복직한 경력이 있는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보훈처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군의 부당한 처우를 몸소 경험한 자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에게 자신과 같은 억울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보훈업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의미에서 임명한 것이다. 

피우진 처장도 취임사를 통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예우를 해드리고자 노력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하 중사의 국민청원이 언론에 보도되고, 적절한 보훈조치가 아니라는 여론이 일자 대통령까지 나서며 재검토를 지시해 결국 이번달 2일 최종 ‘전상’ 판정을 받게 됐다.

시키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공무원의 업무태도를 ‘복지부동 무사안일’( 伏地不動 無事安逸)로 표현한다.

▲DMZ 수색작전에 나섰던 하재헌 하사 등이 북한군 지뢰 도발로 큰 부상을 입게 한 목함지뢰를 당시 군 관계자가 공개하고 있다. (자료=뉴시스)

하 중사 사례처럼 처음부터 ‘전상’ 판정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과 대통령까지 나서자 비로소 움직이는 공무원의 업무형태의 변화는 비단 해당 공직의 수장이 바뀐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일선에 있는 공무원 개개인의 사고가 바뀌어야 비로소 변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30년 이상 군 복무 중 사고로 인해 경추디스크 판정을 받고 수술 후 전역한 의뢰인이 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을 받았다”면서 필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았으나 몇 달 후 의뢰인은 이번에는 보훈처에서 정상적으로는 상이등급 6급 판정을 해야 하나 7급 판정을 했다며 재차 소송을 요구해 결국 이번에도 법원의 승소판결을 받았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보훈처 담당공무원은 필자에게 “국가유공자 소송은 한 번하고 종결되는데 의뢰인은 두 번까지 소송을 제기해 보훈처에 대한 신뢰가 없을 것 같네요”하며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해당 보훈처는 각 지부 보훈처별로 예산이 제한돼 있다 보니 보훈대상자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을 한 바 있다. 

결국 법원의 판결을 받아오면 마지못해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국가를 위해 봉사한 군인이 해당 공무원의 ‘복지부동 무사안일’한 업무태도로 한 순간 국가에 대해 등을 돌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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