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오 경위 “극단적 선택 유감…자존감 높여 삶 포기 말아야”

韓, ‘자살공화국’ 오명…“예방활동, 국가→민간 주도 전환 필요”
김영식 기자 | ys97kim@naver.com | 입력 2019-10-18 16: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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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오 서울 성동경찰서 경위는 본지 인터뷰에서 자살예방 관련 패러다임을 기존 국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로컬타임즈 글·사진 김영식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 10~30대 사망원인 1위, 일일 평균 37.5명꼴, 전년 대비 10%가량 증가한 총 1만3,670명 사망,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 등등...


이런 극단적 수치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어감만으로도 부정적 느낌을 진하게 풍기는 ‘자살’이다. 과거 일본이 가졌던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은 어느 순간 우리의 것(?)이 돼버렸고,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 꽃다운 25살의 가수 겸 배우인 한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우리 사회 자살에 대한 경각심 고취는 물론, 진단과 반성의 목소리 등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특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시민들의 뒤늦은 추모 물결은 사회적으로 자살예방에 대한 총체적 점검, 이를 통한 원인 진단 그리고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모습이다.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파생된 ‘인간소외’ 현상의 확산 등 요인으로 인류의 자살 문제는 점차 심각해져 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경제적·물질적 원인에서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온라인에서의 무분별한 인격 말살이 자살 요인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자살 원인을 대체적으로 ‘정신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우울증’을 가장 지목하는 가운데, 평소 시민 스스로의 멘탈 관리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특히 자살을 경험한 유족이나 관계인들의 경우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만큼 국가나 민간 가릴 것 없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피해자 시그널반드시 존재유가족 죄책감 요인

차별 따른 열등감 ↑ 우울증확대극단적 선택

 

이런 가운데, 한 명의 경찰 수사관이면서 교육자로서의 연구 활동, 경찰청 사이버테러센터 재직 당시 무려 80여 명에 달하는 잠재적 자살자들의 생명을 구해내는 등 서울 성동서 소속 이범오 경위가 말하는 ‘자살예방’ 관련 철학에 이목이 집중된다.


하루 평균 35분마다 한 명의 목숨이 스스로 사라져가는 이 시대, 본지는 자살의 원인을 명확히 진단하고 이에 따른 국가·개인별 구체적 실천 방안 등을 묻기 위해 지난 15일 오후 성동서에서 이 경위를 만났다.


이 경위는 먼저 자살자들의 반복되는 행동패턴에 주목했다. 평소 자살을 생각하다가 시도해보고 결국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살자는 반드시 주위에 ‘시그널’을 보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4인 가구를 감안해 한 해에만 5만여 명에 달하는 유가족이 발생하는데, 남겨진 이들의 가장 큰 정신적 스트레스 요인이 이 ‘시그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표적·정신적 질환인 ‘우울증’은 한국 자살률 급등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이 경위는 “각종 차별에서 오는 열등감이 우울증 발병의 주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신체적·정신적이며 경제적·가정적 요인 등에 따른 차별행위가 사회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경위는 “선진국은 이 같은 우울증 관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서 “미국 오하이오주는 우울증을 경증과 중증으로 구분, 환자별 맞춤형 빅데이터를 구성해 원격의료를 활용, 잘 관리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연도별 차이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뚜렷한 증가세의 한국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예방활동과 관련해 무엇보다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경위는 “두레나 품앗이 등 전통적인 커뮤니티들이 붕괴되면서 자살률이 급증해왔다”며 “정부 주도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만큼 이제 자살예방 작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민간 쪽으로 유도·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리 고유의 사랑방 문화부활 시급

일본 자살률 급감민간단체 활약 바탕

 

그동안 정부가 ‘자살예방’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그렇다면 세부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등 국민들에게 홍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정부 차원의 이른바 ‘자살 예산’은 180억 원 남짓으로 크게 부족하고, 수많은 사건 대비 이를 관리해야 할 인력 역시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결국 인력·예산 부족과 ‘자살’이라는 민감한 개인·가족적 문제가 맞물리면서 국가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이에 이 경위는 우리 고유의 ‘사랑방 문화 부활’을 통한 민간 기반의 종합 커뮤니티 실현을 장기적인 관점의 근본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경위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적·정신적 유대감을 함양할 수 있는 ‘사랑방 문화’ 조성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유년기부터 자살예방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장기적 관점의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 우리에 앞서 이전에 자살공화국으로 불리던 일본은 예방활동과 관련, 민간 주도로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하면서 서서히 자살률을 낮춰가고 있다. 일본에서 법 제정 이후 무려 30%에 달하는 자살률 하락을 이끈 ‘자살대책기본법’의 바탕이 된 민간 비영리단체들의 활약은 이런 이 경위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지난해 일본은 1981년 이후 37년 만에 자살자 수 2만1,000명을 밑도는 등 통계 집계를 시작했던 1978년 이래 단 한 차례도 없던 1만 명대 진입까지 가시권에 둔 상태다.


이들 민간단체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연계를 통해 자살 고위험군들에 대한 세심한 관리를 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의 관련법 제정 등에 현실을 반영한 징검다리 역할 등을 적절히 수행해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이 경위는 “우리 현실을 감안해 종교단체나 가족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한 자살예방 활동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특히 자살을 경험해본 ‘자살 경험자’의 재사회화 과정을 거쳐 이들을 활용한 재상담 프로그램 등은 관이 아닌 민간 주도가 적절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어느 순간 화장실 문화가 많이 개선된 것처럼 자살예방 역시 하나의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면서 “세부적인 자살예방교육 콘텐츠 등 저변은 이미 우리 사회에 구축돼 있으며, 체계적인 조직화 및 확대 적용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자동상담봇’ 국내 도입‧확대 필요성
경찰‧소방 종사자 자살률↑ “아이러니”

 

국가 차원에선 필요한 수준만큼의 개입이 바람직하다고 이 경위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국가 공권력의 자살자 개입은 공감을 의미하는 ‘래포(Rapport)’ 형성의 ‘예상 개입’과 자살 시도 시 주변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실행 개입’으로 나뉘는데, 이로 국한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위는 또 “국가가 공인하는 자살예방 자격증 제도를 도입해 공무원 채용 또는 승진에 이를 가점으로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또 정부 부처에 자살예방부를 신설, 각 구청 등 지자체 인력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IT 강국’으로 손꼽히는 대한민국에서 오랜 기간 온라인 악성 댓글(이하 악플) 등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자살률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최근 사회적 파급력이 큰 연예인들이 이 같은 ‘악플’에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이 경위는 “악플 문제는 결국 익명성에 기댄 불특정 다수 유저들이 사회의 부정적 문화로 자리잡은 ‘차별’ 인식을 극단적으로 외부로 표출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 실명제 인증 등의 문제는 법 개정과 맞물려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 경위는 현재 미국·일본 등지서 운영 중인 ‘자동상담봇’의 국내 도입을 촉구했다. 외부 노출에 민감한 유명인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층의 경우 신분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자동상담봇’은 예를 들어 ‘20대 여성은 일반적으로 밤 10시 어떤어떤 내용의 상담을 하더라’는 등의 내용들을 취합해 정보화하고, 이를 빅데이터로 활용한 프로그램을 통해 상용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경위는 “자살예방 관련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며, 특히 사회적 기업이나 IT 유관 기업들과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들 협조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내가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언제든 어디서든 도움의 문은 열려 있어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나를 지켜낼 것

 

단기적 처방과 관련해선 ‘맞춤형 모델’ 개발을 통한 적극적 교육을 강조했다. 학생이나 경찰·소방관·군인 등 자살 고위험군 위주로 직종별 교육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경위는 자살자 구조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과 소방 종사자들의 자살률이 타직종 대비 오히려 높다는 ‘아이러니’한 현재의 실태를 꼬집었다.


이에 이 경위는 “이들은 자살 경험자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매번 진심으로 공감하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몰입’ 단계로까지 이어진다”면서 “이는 경찰·소방 등 관련 상담자들의 높은 이직률의 이유로, 상담 뒤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는 ‘소진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경위는 경사 시절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등에서 일하며 3년 간 총 77명에 달하는 소중한 생명을 구해냈다. 경찰청장 표창도 받았다.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한 자살예방교육을 교육자로 수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관련논문을 준비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향후 목표는 자살예방과 관련한 전문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범오 경위가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사진=김영식 기자)


이 모든 에너지의 원동력은 “경찰관으로서 단 한 명의 목숨이라도 반드시 구해내고 말겠다”는 이 경위의 사명감이다.


이 경위는 지금 이 순간,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도움의 문을 두드려라”고 했고, 관련업종 종사들에게는 “선생·의사가 아닌 ‘친구’가 돼야 한다”고 각각 조언했다.


이어 “자살은 고위험군에 국한된 게 아니라 급작스런 환경변화에 부딪힌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라며 “시민 각자 스스로 자신들의 정서를 통제·관리하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평소 나로 인해 사회가 밝아질 수 있다고 여기는 ‘자존감’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며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100% 나 자신을 스스로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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