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믿음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초빙교수
온라인뉴스팀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02-26 17: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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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초빙교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힘이 엄청나게 센 거인 악당인데,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강도질을 일삼았다.


그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데려와 자신의 쇠 침대에 눕혀 놓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잘라내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여서 죽였다. 그래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란 말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횡포나 독단을 가리킨다.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쇠 침대 하나쯤은 마음속에 감춰 두고 있다. 각자의 쇠 침대는 각자가 지닌 원칙이다. 누구나 자기 생각과 가치관이 있으니 일단은 ‘나’의 편이 될 수밖에 없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이고 나의 말과 행동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 또한 ‘나’이다. 그런 ‘나’들이 모이고 쌓이면 ‘우리’가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평생 ‘우리’를 만들면서 산다.


개인과 작은 집단이 가진 이 쇠 침대는 이기(利己)와 다양의 산물이라고 치자, 하지만 사회 지도층들이 이 침대들을 대놓고 자랑하면 어떻게 될까?


일일이 하나씩 꺼내어 그 사건들을 다 언급하지 않아도 요즘 이 침대들이 ‘나’와 ‘우리’를 과시하면서 세상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하도 여러 가지 원칙들이 난무하니 무엇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소중한 공동체인 국가의 원칙이 망가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 왕이 급히 태자를 불렀다. 초나라 법에 따르면 수레를 타고 내전으로 통하는 문을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비가 와서 내전 뜰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고인 물에 옷을 더럽히기 싫었던 태자는 수레에 탄 채로 내전에 도착했다. 문을 지키던 장수는 법을 내세워 저지했으나, 태자가 말을 듣지 않자 가차 없이 말을 찌르고 태자의 수레를 부숴 버린다.

 
태자는 왕에게 문지키는 장수를 처형할 것을 읍소했으나, 왕은 그가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흐뭇해한다. 그리고는 문을 지키는 장수를 특진시키고, 태자는 후문으로 내보내며 다시는 법을 어기지 말 것을 훈계한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일화이다.


법과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왕과 태자에게까지도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는 신하의 믿음이 돋보인다.  

 

법과 원칙과 믿음이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떠할까? 동양의 대표적인 성인이며 사상가인 공자의 말을 들어 보자.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를 묻자 공자(孔子)는 “식량을 풍족히 하고 군대를 튼튼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으라”고 대답했다. 경제와 국방과 신뢰를 국가의 근간으로 알려준 것이다.

 

자공이 다시 우선순위를 물으니, 신뢰, 경제, 국방의 순으로 정해 줬다. 그러니까 국가의 법과 원칙의 시행에 대한 백성의 믿음 ‘民信’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백성이 굶어 죽거나 전쟁으로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나라가 세워지고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음은 원칙에서 온다. 원칙은 가장 근본적인 사고와 행위의 규칙이다. 그래서 원칙의 실행은 투명하고 일관돼야 한다. 크기가 서로 다른 쇠 침대가 없어야 하는 이유다.

악당 프로크루스테스는 결국엔 헤라클레스와 쌍벽을 이룬 영웅 테세우스(Theseus)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그가 저질러 온 똑같은 방식으로 처치해 버린다. 남을 해치려고 만든 침대가 결국에는 자신의 형틀이 되고 만 것이다. 

 

 

▲침대의 크기에 맞춰 키가 큰 사람은 발목을 자르고, 키가 작은 사람은 다리를 늘려서 죽였다는 그리스 아티카의 강도 프로크루스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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