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판단하고 행동하라!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11-28 17: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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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똑 떨어지게 콕 짚어서 “이거!”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명칭도 그렇다고 한다. 늘 한 가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건 진짜 이름이 아니다라고 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노자 ‘도덕경’의 말이다. 

진정과 영원을 찾아 헤메는 인간들에게는 황당한 말로 들린다. 

세상이란게 허구헌 날 변하고 친구든 연인이든 약속과 맹세는 깨지고, 내 마음조차도 하루에 수십 번씩 변하는 걸 아는 우리는 영원함, 진정성, 변치 않는 걸 원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규범이란 게 생기고 도덕이라는 게 나왔다. 

초등학교 커리큘럼에도 들어있는 ‘도덕’은 무엇일까?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로 우리는 도덕을 이해한다.

그리고 기왕이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도덕 속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 그 안에서 나름 편안해 한다. 

그런데 도덕이란 글자의 뜻을 해부해 본다면 의외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도 신성시하는 도(道)란 글자는 辵+首의 구조다. 

부수 辵은 머리카락 흩날리며 걷는 모습이고 머리를 뜻하는 首는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道는 머리칼이 날릴 정도로 속도내 걸으면서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도(道)는 단순하게 말하면, 길(way), 방법(method)으로도 해석된다. 

어떤 길을 가는 가와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가는 같은 의미이다.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는 게 아니라 머리

칼이 흩날릴 정도로 걸으면서 주변의 상황 정보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수시로 다음 걸음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역동적인 면이 있다 보니 도(道)가 늘상 한 가지로 그렇게 파악될 수 없다고 노자도 말했을 것이다.

한편, 덕(德)은 득(得)이다. 도(道)를 행해 얻어지는 결과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따르는 결과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향할지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해서 웅덩이나 공사장에 발이 빠지거나, 판단을 잘못하고 횡단보도 파란 불이 깜빡일 때 건너다가 차에 치이거나, 아니면 주위도 잘 살피고 판단도 잘 했는데 몸이 굼떠서 사고를 당했든지 간에 자신이 감당할 몫이다.

이것이 득(得)이고 덕(德)이다. 

‘도덕’은 냉혹하다. 너그럽고 안전한 면모는 아무데도 없다. 

우리가 편안히 여겼던 도덕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수시로 변화하는 개념인지 알 수 있다. 

노자가 생각한 도덕도 자연에서 시작한다. ‘저절로 그러한’ 자연은 따로이 기댈 규범이 없다. 

그저 생명이다. 생명은 시시각각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지 말지 어디로 향할지 결정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개개의 생명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게 돼 있다. 그것이 바로 득(得)이고 덕(德)이다. 

죽은 개체는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을 보라. 

그들은 잠시도 주변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백수의 왕 사자조차도 어슬렁거리듯 보이지만 호시탐탐 먹잇감을 탐하고 있다. 

주위를 살피면서 움직이는 일, 그러니까 도(道)의 행위를 잠시라도 놓친다면 동물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사철 중에서 커다란 이별을 두 번은 해야 한다.

봄꽃이 너무 예뻐 떠나 보내지 못하거나 아름다운 단풍잎을 여전히 달고 있다면 그들의 생명작용에 큰 문제가 생긴다. 

꽃을 떨구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잎을 끊어내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야할 때인지 깨어야 할 때인지, 말할 때인지 침묵할 때인지, 만날 때인지 헤어질 때인지 가늠해야 한다. 

민첩하게 움직이면서(辵) 생각해야(首) 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그렇게 해 얻어진 결과(德)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어찌 개인 뿐이겠는가? 가정도 사회도 국가라는 공동체도 도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 또한 생명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한국을 둘러싼 국제 환경이 요동치고 있다. 

일본과 중국, 미국 모두 제각각 자신들의 생존 유지를 위해 몸부림치는 중이다. 

지금 여기의 한국의 도(道)는 무엇인가? 과거 조선은 안타깝게도 외부 환경 변화를 바로 보지 못했다. 

몇 백년 동안 지켜왔던 질서만 보았다. 

갑자기 프랑스, 영국, 러시아, 미국이 몰려들자 정치외교 생태계가 교란됐다.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기 어려웠고 어떤 방책을 써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마치 외래에서 온 포식자를 알아보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생명체처럼 조선도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약 백 여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금 역사는 다시금 우리에게 도(道)를 요구한다. 

어떻게 도를 파악할 것인지, 어떤 도를 택할 것인지, 신중하고 정밀하고 예리해야 한다. 

예리한 관찰과 정보 수집력으로 현명한 판단을 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것인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인지? 

얻어지는 결과(得)인 덕(德)은 다시금 우리의 장래가 될 것이다. 

자, 이제 경쾌하게 걸으면서 오감을 동원해 사방을 둘러 보자. 

제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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