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古도시 서울 ‘리더십 부재’…역사·경제적 상징성 못살려

연중 기획 [지방자치 행정 해부]
3. 쇠락하는 ‛600년 수도’ 서울
민진규 대기자 | stmin@hotmail.com | 입력 2019-02-26 17: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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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미국과 캐나다의 선진 자치행정을 배우기 위해 출국했다가 현지가이드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여파가 수습되기는커녕 오히려 소송으로 확대되면서 의원들의 자질, 무분별한 외유행태 등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과천시의회 한 의원은 아내와 자녀가 사는 캐나다 몬트리올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물의를 빚었다.


그동안 드러난 자치단체 의원의 추태는 비단 예천군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국민은 경제불황 속에 본연의 임무는 소홀하면서 세금으로 외유나 하는 의원, 공무원, 단체장 등을 단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하필 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냐고 울부짖을 정도로 억울하겠지만 ‘세상이 변했다’는 말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자치행정을 평가할 첫 번째 대상 도시는 서울특별시로 600년 이상 한반도의 수도 역할을 자임해왔으며 한국인에게 익숙한 속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서울시는 수도라는 이점으로 인재와 돈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도시이다.


서울시는 한국 주요 대기업, 중소기업, 공기업 등의 본사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재정자립도도 높아 자치행정의 독립성이 강한 편이다. 또한 1000만이 넘는 우수한 인재가 거주하는 한국 정치의 중심이기 때문에 서울시장의 정치적 입지도 국무총리보다 높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자치행정이 파행·기형적인 형태로 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시도 역사·경제·현직 서울시장 대부분이 서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에 불탄 것도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다.


지난 20여년 동안 서울시의 자치행정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오곡밸리모델(5G Valley Model)을 적용해 세부 지표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 오곡밸리모델로 평가한 서울시의 자치행정.

 

 ▶시장은 대통령 꿈꾸고 의원은 미견제


정치 여의도로 대변되는 중앙정치와 마찬가지로 서울시의 지방정치도 후진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선 서울시장을 역임한 인사는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등이며 이명박은 서울시장에서 정치적 입지를 완벽하게 구축한 이후 대통령까지 차지했다. 참고로 글의 전개상 편의로 전·현직 시장의 존칭은 생략했다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오세훈도 재선에 성공하며 보수당의 차세대 정치인으로 입지를 구축했지만 초·중·고생 무상급식 찬반투표를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실패해 자진 사퇴했다. 오세훈의 정치적 판단 실수로 호기를 잡은 진보세력은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시장 후보로 내세워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했다.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안철수가 2위인 박원순에게 양보하는 이변도 진보세력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시장인 박원순은 오랜 시민운동가의 생활 속에 터득한 노하우로 2014년 재선, 2018년 3선에 성공했으며 2022년 여권인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중 1명이다. 진보 진영의 시장이었던 조순은 학자 출신, 고건은 공무원 출신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스타였으며 본인들도 대권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지만 정치적 결단력이 부족해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과거 관선 시장들도 서울시장의 정치적 입지로 인해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아 중앙 무대에 도전한 사례가 많았지만 대부분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특히 이명박이 서울시를 거쳐 대통령 자리까지 거머쥐자 서울시장을 대통령이 되는 징검다리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하지만 서울시장 자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가시적 치적을 쌓거나 중앙 정치인들과 경쟁하는 구도가 성립되면서 자치행정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사업도 외형적으로는 성공했지만 하류의 물을 양수기로 퍼 올려 흘려 내리는 반환경적 토목사업의 전형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이명박과 오세훈 등 보수 출신들이 추진했던 도시 재개발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러일으켰다. 박원순의 도시재생과 태양광발전소 건설도 친환경이라는 탈을 쓴 토목행정의 대표적 사례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그나마 아예 존재감조차 없었던 다른 시장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서울시장의 독단적 행정을 견제해야 할 서울시의회 의원들도 존재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진행 중인 시를 망치는 도심 재개발을 제지하거나 새로운 선진모델을 제시하는 의원은 없다. 의원들의 무능과 해바라기 근성은 서울시민의 미숙한 정치의식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한 것이다. 서울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복사판에 불과하고 정책 대결은 실종된 지 오래됐다.


서울시가 ‘정치 1번지’이고 서울시민은 가장 정치적으로 선진화된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이미 지방과 차이가 없는 ‘도토리 키 재기’ 수준으로 전락했다. 정치 1번지 시민이라는 자부심은 단순히 자화자찬식 미사여구가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의원과 시장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역대 서울시장 중 서울시를 완벽하게 잘 이끌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은 정치 및 지리적 입지로 인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오히려 낙후됐기 때문이다.

 
시민이 행복하지 않은 도시, 젊은이가 떠나가는 도시, 정치 난장판이 된 도시라는 이미지로 자치행정이 평가 받는 이상 서울시의 정치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치인, 공무원, 주민 모두가 헛된 자부심만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정상적인 서울 시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업·청년 떠나면서 늙고 낡은 도시로


경제 자치단체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재정자립도가 낮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의 수입은 지방세와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지방교부세, 보조금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서울시의 재정자립도는 80%가 넘을 정도로 우수한 편이다. 서울시 예산은 2016년 24조원, 2017년 26조원, 2018년 31조원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행정서비스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18년 예산을 들여다보면 사회·복지에 9조8,200억원, 교통·안전에 3조6,400억원, 공원·환경에 1조7,500억원 등으로 절반 가까운 예산이 소모성 비용에 해당된다. 정작 도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경제·일자리는 5600억원, 재생·주택은 4900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고령화로 인해 복지재정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식 복지정책은 없는지 따져봐야 할 때이다.


보수 정부 시절에 추진했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주택가격이 폭등하면서 청년층이 경기도로 탈출하고 있는데 정작 대학생과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은 줄어들고 있다. 정부의 국토 균형발전 논리에 따라 많은 공기업이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했고, 임대료 부담으로 기업들도 탈 서울 행렬에 동참했다.


서울의 경제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과 청년들이 임대료 부담으로 서울을 떠나고 있음에도 정작 서울시는 부동산 가격을 올려 기득권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재개발사업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이 소비 중심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강남의 테헤란로는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급성장하면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혁신경제의 중심부로 자리매김했었다. 하지만 임대료 급등으로 벤처기업 대부분은 성남의 분당, 판교 등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지금 테헤란밸리는 공실과 상권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대문의 의류타운, 명동과 남대문시장의 외국인 쇼핑거리, 이태원의 쇼핑거리 등 서울의 소비시장을 주도하던 상권은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서울시장이 아무리 TV 쇼 프로그램에 나와 인기를 얻어도 도시의 경제적 경쟁력이 저하되면 대통령 되기가 어렵다.


경기도는 서울시정의 난맥상을 틈타 알짜기업을 유치하면서 오히려 서울보다 경제를 잘 이끌어가는 지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자치단체의 경우에도 자치단체장이 정치놀음에 열중하다가 경제가 나빠진 사례가 많다.


서울시도 중앙정부의 경제정책에 보조를 맞출 필요는 있지만 자체 경쟁력이 취약해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가정용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고 도심 재개발로 주택가격을 올려도 서울시 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998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벤처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한 것처럼 낡고 늙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면 서울시는 점점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 형국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 전시행정은 광화문광장 재개발, GTX 광역철도망 구축, 강남 삼성동 지하쇼핑몰 건설, 종합운동장 재개발, 제로페이 결제시스템 보급 등이다.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지만 기대 효과는 불투명한 사업이 대부분이다.


박원순 시장이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제로페이도 정작 중요한 시스템 구축보다는 홍보와 공무원을 동원한 가입자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5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가 부동산 거품으로 얻은 가상의 이익을 바탕으로 즐기던 과시성 소비가 위축되면서 소매업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해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아 이들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제로페이를 도입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카드 수수료 1~2% 때문에 자영업자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과밀화된 자영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임대료, 물류비, 공공요금 등을 소매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으로 인하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등 자만에 인구감소로 추가 위기 

 

사회 서울의 인구는 1988년 11월 1,000만명을 돌파한 이후 2010년 1,057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점점 줄어들면서 2016년 990만명으로 1,0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있는데, 주요 경제활동 인구인 30~40대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서울을 떠나고 있다.


주거비용이 너무 높고, 일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하며 서울을 등지는 젊은이들이 향하는 지역은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경기도이다.

서울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단순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토의 균형발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서울에 살고 싶지만 살 수가 없어서 떠밀려 나가는 비자발적 유출이 더 많다.


자치행정 20여년 동안 오히려 인구가 줄어드는 기현상도 대표적인 자치행정의 실패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서울시가 1970년대 토목공사식 개발로 도시 재개발을 주도하면서 부정부패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도박판으로 변질된 도심재생사업과 각종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사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시내버스 노선을 조정하거나 택시회사의 운행 편리를 봐주는 등 편법이 있는 곳에는 항상 공무원과 업체의 검은 유착이 있었다. 2015년에는 한강시설물을 관리하는 업체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은 공무원도 발각됐다.


정책보다는 세 대결로 변질된 지방선거에 공무원을 동원하는 것이 일반화됐고, 지방 정치인과 공무원이 담합해 이권을 주고받는 것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서울시 산하의 공기업도 복마전이라고 볼 수 있다. 선거운동을 도운 사람들이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가고, 내부정보를 활용해 가족까지 편법 채용하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부실 공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세금이 천문학적인 규모로 확대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자치행정 이전에도 서울은 지방의 인재와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한국의 중심이라는 이유로 서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인프라가 잘 정비됐고, 가난한 지역의 세금을 밑바탕으로 흥청망청 세금잔치를 즐겼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가 강북이나 강서, 강동지역에 비해 혜택을 받았다. 하다못해 지하철 역사 내부의 인테리어와 공중화장실의 청결마저 지역 차별이 심할 정도다.


서울시민들의 우월의식도 시의 잠재적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차별과 경쟁이 잘못됐고 후진적인 정치관행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서울의 강남, 강북 차별은 영호남 지역차별 못지않게 심한 편이다.


강남구와 서초구 경우에 행정서비스의 질이나 다양성이 아니라 단순 지역적 이점으로 얻은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며 다른 자치구에 배타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결국 이들 지역은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1등을 유지할 것이라는 자만에 빠져 행정서비스 개선을 소홀하게 생각하다가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


해당 자치단체장과 공무원을 보면 소양이 부족하고 이기주의 사고에 빠져있다. 강남구도 과거 강북의 종로구가 정치 1번지였던 것을 넘어 서울의 신 정치 1번지라는 자부심을 한껏 뽐내지만 정작 정치 선진화는 달성하지 못했다.


건물과 네온사인은 화려하지만 정작 지역 정치인과 주민들의 소양이 부족하고 태도가 편협했기 때문이다.

                                                                                - 다음 호에 계속 - / 민진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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