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설날 지켜온 역사…‘음력설’ 그리고 현대 적응기

‘구정’ 굴레 깨고 ‘설’문화 수호…‘혼설족’ 등 세태는 변화
최영주 기자 | young0509@segyelocal.com | 입력 2020-01-15 1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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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경자년 새해맞이 이미지.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까치 설날’에 깃든 ‘음력설’에 대한 수호 정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지금은 잊혀져(?) 가는 설날 동요의 가사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작다'란 의미를 지닌 ‘아찬’이 ‘아치’로 변해 전해오다 또 다시 ‘까치’로 변해 ‘아찬 설’이 ‘까치 설’로 됐다는 유래설이 있다.
 
또, 신라 삼국유사에는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해 왕을 해하려 했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 용의 도움으로 화를 면했다는 설이 있다. 이에 소지왕이 쥐와 돼지· 용은 십이지 동물로 기릴 수 있지만 까치는 그럴 수 없어 새해 전날을 까치설로 정해 기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음력 1월 1일인 설날을 ‘구정’이라고 부른다. ‘왜 구정인가’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구정’의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2019년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음력으로 보면 아직 해를 넘기지 않아 2019년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다.

 

▲ 설을 맞이해 방앗간에 불린 쌀을 담은 그릇이 줄지어 있다. (자료=블로그 갈무리)

 

1896년 고종 황제 시절 태양력이 도입됐다. 하지만 설날의 행사는 음력 그대로 유지가 됐다. 그렇게 하는 것이 외세에 맞서 우리의 자주성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종 황제 승하 후 순종이 즉위하고, '을사오적' 이완용이 1907년에 설 행사 폐지를 진언해 결국 사라지게 됐다.

이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일제당국이 우리 설날을 ‘구정’이라면서 ‘이중과세’라는 덜미를 씌워 탄압했다.


‘구정’이라고 부른 이유는 음력 설날을 타파해야 될 구습의 이미지로 인식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일제는 자신들의 양력 시간 체계에 맞는 양력설을 새롭고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신정’으로 칭했다. 하지만 피식민지인인 한국인들이 지내는 음력설은 오래돼 없애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으로 부른 것이다.

일제는 구정을 폐지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설날에 시험을 보게 하고, 산업 현장에서는 조업을 강요했다. 1938년에는 음력 사용을 금지하면서 설날에 평소처럼 일하고 수업하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방앗간 조업 금지를 내려 떡국을 못먹게 가래떡도 만들지 못하게 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 설날 차례를 지내고 가족이 모여 차례음식을 먹고 있다.

그렇게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고유 명절까지 침해를 당하면서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광복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권은 친미 정권으로 오히려 대한민국의 주체성보다 미국 문화를 더 권장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크리스마스 공휴일 지정이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설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는다. 양력설만 3일 연휴로 지정하고 음력설은 우리 민족의 수치로 여겼다.


이같은 설날 탄압은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없어지는 듯 했지만 5.16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설날이 탄압받기 시작했다.

일설에 의하면 1962년에 극장에서 설날을 맞아 ‘구정 프로’라고 개봉 영화들을 홍보했는데 박 정권은 그 말조차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민족의 정체성 말살과 서구화 되는 과정 속에서 온갖 수난을 겪은 설날이 드디어 공식적인 휴일로 지정되게 된다.

1985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설날을 처음에는 공휴일 지정에 반대를 했으나 여당인 민정당에서 ‘조상의 날’로 칭하고 공휴일로 정하자고 건의하자, 정부는 무조건 반대를 할 수 없어 ‘조상의 날’ 대신 ‘민속의 날’로 명명해 공휴일로 정했다.


이후 198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음력설을 설날로 개칭하고 전후 하루씩을 포함해 모두 3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로써 ‘구정’이라는 낙후된 이미지를 벗게 됐다.

 

▲ 좋은 소식을 전해 온다는 길조 까치.

 

이에 대해 평론가인 하재근 작가는 “설날이 아니라 ‘민속의 날’로 정해진 것은 1985년 양 김 씨가 주도하는 신민당 돌풍이 일면서 전두환 철권 통치가 균열된 시점으로서, 민심이 심상치 않으니 국민들의 정서를 달래기 위해서 설날 이름을 바꿔서 하루만 공휴일로 한 것이 아니냐”며 “1987년 독재 정권이 완전히 무너지고 직선제로 개헌을 한 1989년에 비로서 설날이라는 명칭을 되찾고 설날이 3일 연휴가 됐다”며 ‘구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대에 붙여진 ‘이중과세’라는 말이 외환위기 이후 다시 등장한다. 신정-구정 이중과세를 부정하고 신정 연휴 기간이 줄게 되면서 결국 음력설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설 명절 수호와 회복은 국민 스스로 민족성을 가득 담아 지켜온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이겨내고 독재와 외세에 맞서서 쟁취해 낸 의미가 너무나 큰 투쟁의 결실인 것이다. 

 

다시 한 번 의미를 돌이켜 보면 ‘반달’ 작곡가 윤극영이 지은 동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에도 역사적 아픔이 스며들어 있다.


‘작은 설’의 의미로 ‘아찬 설’이 ‘까치 설’로 변해 전해진 의미도 있지만 음력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일제에 노래를 통해 저항해 보려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 동요 속 까치가 일제 암흑기에 하나의 탈출구의 존재로 부각돼 현대에 와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대접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 귀향하는 시민들이 역 대합실에 가득하다 (사진=SR 제공)

▶ 민족성으로 지켜낸 ‘음력설’의 현대 적응기 

힘든 시간을 겪어오면서 지켜온 음력설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그 받아들임이 달라졌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즐거운 날로서의 명절로만 다가오지 않는 세태가 됐다.
 
언제부터인가 통계자료로 ‘명절이후 이혼율 급증’, ‘명절 미혼 남녀나 미취업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무엇일까?’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다.

 

▲ 명절 연휴에 가족을 찾지 않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혼설족)이 많아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근래 몇 년 새 신조어로 ‘혼설족·D턴족·J턴족’이 생겨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마케팅이 설맞이 이벤트로 진행된다.

 

‘혼설족’은 혼자 설 명절을 보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D턴족’은 설 행사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호텔 들러 휴식을 취하는 사람을 말하고, 설에 가족을 만나 차례를 지낸 후 인근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함께 즐기는 사람들을 ‘J턴족’이라 한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생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혼설족이 되기도 한다.

이들을 겨냥해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 이라는 제목의 정보가 명절 이전부터 발표돼 연휴 기간 동안 해외여행객이 급증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편의점 업계나 배달 전문 업체는 이들을 상대로 설 명절 도시락 세트를 출시한다.
 
▲ 2017년도 인터파크가 싱글족 설 연휴 트렌드 조사를 했다. (사진=뉴시스)

한편으로는 미혼·미취업으로 셀프 혼설족이 되는 사람도 있다.

대구 북구에 거주하는 이 모씨(35세)는 “직장 스트레스로 명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기도 하지만, 실제 아직 미혼이라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 가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며 “이중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일을 핑계대고 고향을 따로 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모님께 죄송하긴 하지만 부담감 없는 명절을 혼자 조용히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며 셀프 혼설족이 된 이유를 밝혔다.
 
‘혼설족·D턴족·J턴족’… 명칭이 어떻든 다 좋다.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 맞게 고유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 바뀌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유교가 남긴 구시대적인 관습 등 사라져야 할 것도 있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홍보 포스터.

 

하지만 ‘음력설’이 지닌 역사적인 의미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말살 당했던 문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력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설날을 나들이 가는 휴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후 1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역사는 흘러 지나가지만 그 기억은 남아 보존된다는 ‘법’을 잊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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