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 심장 수술 한 우물 … “北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여생 바칠터”

심장전문 세종병원 설립자 박영관 회장
온라인뉴스팀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8-06-01 19: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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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참 빠르다.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설립자 박영관 회장의 자서전 출간 소식을 접하고 든 생각이다. 약 7년전 취재차 만났던 박 회장은 당시 에너지 넘치는 전문병원 CEO였다. 그런데 그가 벌써 올해 팔순(八旬)이다. 얼마 전엔 그간의 삶을 돌아보는 자서전 ‘심장병 없는 세상을 꿈꾸다’를 냈다. 책에는 대한민국 대표 심장전문병원을 일궈내기까지의 고난과 영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 회장은 의료계에선 외골수로 통한다. 40대 초반, 잘나가던 의과대학 교수직을 내던지고 ‘돈이 안 되는’ 심장병원을 그것도, 서울이 아닌 경기도 부천의 작은 동네에 열었다. 그 후 30여년간 ‘심장’이란 한 우물만 팠다. 그는 존경받는 의료계 원로이기도 하다. 단순한 병원 경영자에 머물지 않고 30여년간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무료 치료하며 인술(仁術)을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그간 세종병원 지원으로 수술과 치료를 받은 심장병 어린이는 국내외를 합쳐 2만5000여명에 이른다. 흔히 ‘100세 시대’라 하지만 팔순은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가 최근 나이를 잊은 듯 병원을 “2020년까지 아시아 최고의 심뇌혈관센터로 키우겠다”며 ‘제 2의 개원’을 선언해 의료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30일 인천 계양구의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회의실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매서운 호랑이 눈썹에다 부리부리한 눈매는 예전 그대로다. 인사를 끝내자마자 심장 모형을 보여주며 선천성 심장병 얘기부터 풀어놨다. “태아의 0.8%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나요. 이런 아이들은 7살 이전에 수술만 해주면 정상인처럼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수술 적기를 놓치면 폐동맥고혈압으로 20세 전후에 사망합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이런 심장병 어린이가 2만여명에 달했어요. 실력 있는 의사가 적은 데다 수술 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죠. 그래서 안타깝게 죽어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열이면 열이 반대했다는 심장전문 병원을 개원한 계기를 물었다. “한양대 의대 교수시절인 1975년 봄이었어요. 아들의 심장병 진단을 받고도 수술비가 없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가는 한 가장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어요. 언젠가 내 병원을 열어 아이들을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당시는 심장 수술을 하는 곳은 서울대병원과 연세 세브란스병원밖에 없던 시절이다. ‘심장전문병원을 세우겠다’는 그의 선언에 주변에선 모두가 ‘무모하다’며 반대했다. 심지어 아내인 정란희 전 세종병원 이사장도 말렸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박 회장은 준비 과정을 거쳐 1982년 산부인과 의사였던 선친 박봉현 박사가 생전에 사둔 논현동 땅을 처분해 부천에 세종병원을 개원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 세종병원은 대학병원에 뒤지지 않은 심장 치료의 한류 본거지가 됐다.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 의료진이 앞다퉈 심장수술 기법을 배워간다. 그도 그럴 것이 심장수술 연간 1000여건, 심혈관촬영술 4400여건을 시행한다. 매년 30만여명의 심장 질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소아심장 분야와 관상동맥 수술은 아시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개원할 당시 기초의학에 근거한 심장전문병원으로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시 뺨을 맞아가며 죽은 환자의 심장을 구했어요. 그렇게 확보한 선천성 심장병 증상의 30여가지 심장을 부검하고 연구한 결과 심장병 치료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세종병원은 ‘심장병 사관학교’로도 불린다. 국내 최초로 심장이식을 실시한 송명근 전 건국대 교수를 비롯한 이영탁(삼성서울), 박표원(삼성서울), 서동만(이화의료원) 등 내로라하는 심장 명의들이 세종병원을 거쳐갔다. 대학병원 흉부외과나 심장내과에 근무하는 100여명이 세종병원 출신이다.

박 회장이 심장병 어린이 지원에 팔을 걷어붙인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1983년 11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방한했던 낸시 여사가 우리나라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둘을 데리고 미 대통령전용기에 올랐다는 뉴스를 접한 것이다. “미국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한다는 겁니다. 국가로 봐선 고마운 일이지만 심장 전문의 입장에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도 살 만해졌는데 아직도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야 하는가’라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이후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건강보험이 실시되고 의료기술도 괄목하게 발전하면서 큰 돈이 없어도 심장수술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 지원 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본인 부담금 300만원을 낼 수 없는 이들이 여전히 많았다. 돈이 없는 심장병 어린이 가족을 찾아내 후원기관과 연결하며 이들의 생명을 살려냈다.

박 회장은 병원이 자리를 잡자 해외 심장병 환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1989년 시작한 해외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무료수술 지원사업 규모는 지금까지 25개국 1460명에 이른다. 주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몽골, 동남아시아 환자들이다. 민간병원으로는 최장 기간, 최다 해외 환자들을 진료했다. “우리가 지원한 국가 대부분은 깨끗한 의료시설과 기술이 없어요. 설사 치료 여건이 된다 하더라도 수술 성공률이 20∼30%에 불과해 위험합니다. 그러나 우리 병원에 데려오면 100% 성공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도 아닌 부천 1호선 소사역 부근 우리 병원에 외국인들이 자녀 손을 잡고 물어물어 찾아 오는 겁니다.”

세종병원 설립자 박영관 회장이 30일 병원 지하 1층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해외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환자들의 사진에 얽힌 일화를 설명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 자리에서 “30여년 동안 심장전문 병원을 운영하면서 국내외 수많은 심장병 어린이 무료수술을 했지만 유독 북한 심장병 아이들을 돕지 못한 안타까움이 컸다”며 “남과 북의 평화 교류가 본격화하면 우리 병원의 심장 기술과 의료진으로 북한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그에겐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1989년 중국 연변에서 온 강수월(당시 6살) 어린이다. 세종병원의 해외 의료나눔 환자 1호다. 수술을 받은 후에도 탈 없이 성장해 결혼을 했고, 지난 2016년에는 아이를 세종병원 산부인과에서 낳았다. 강수월씨는 출산 후 박 회장을 찾아와 “세종병원에서 두 번의 생명을 얻었다”고 감격해했다.

박 회장은 러시아 심장병 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유명 인사다. 추위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러시아에서는 통계적으로 매년 130만여명이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데, 치료차 병원을 다녀간 러시아 환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나 이스라엘로 가던 환자들이 이제는 발길을 돌려 세종병원을 찾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하바롭스크 명예시민에 위촉됐다. “하바롭스크시는 우리 병원이 소재한 부천시와 자매도시입니다. 2003년부터 현지 심장병 환자 무료수술사업을 벌여 59명을 치료했어요. 그래서 매년 하바롭스크시 건립 기념행사에 저를 초대합니다. 2015년에는 직접 그곳을 방문해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어요. 수술받은 이들이 ‘새 생명을 준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저도 당시 양국 관계 증진의 의미로 소콜로프 시장에게 3만달러(약 3000만원)을 기탁했습니다.”

박 회장은 현재 병원 경영은 서울대 의대 출신 심장내과 전문의인 장남 박진식 이사장에게 맡겼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이틀은 부천세종병원, 이틀은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하루는 부천시립노인전문병원을 오가며 업무를 챙긴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건강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헬스와 걷기를 하며 체력을 챙긴다. 젊은 시절 진료와 병원 일에만 매달리다 심장전문의로서는 부끄럽게도(?) 심근경색으로 고생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91세인 송해 선생이나 99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처럼 건강관리를 잘해 오래오래 일하고 싶어요. 아직도 꿈이 있어요. 2020년까지 우리 병원을 아시아 최고의 심뇌혈관센터 반열에 올리는 겁니다.”

그 같은 계획의 일환으로 박 회장은 고혈압·심부전 권위자 오병희 전 서울대병원장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원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미국 하버드의과대 방사선과 부교수로 뇌혈관 중재적 치료의 세계적 대가로 손꼽히는 최인섭 교수도 뇌혈관센터장으로 스카우트했다. 앞서 2013년에는 그의 호를 딴 우천심뇌혈관연구재단을 만들어 아시아태평양소아심장학회 등 심뇌혈관 분야 국내외 학술활동에도 기금을 출연하는 한편 국내외 의료인 교육·저소득층 의료 지원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박 회장은 최근의 남북한 관계 개선 소식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미북 회담 이후 남북의 평화적 교류가 본격화되면 우리 병원의 심장기술과 의료진으로 북한 심장병 어린이를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심장전문 병원을 운영하면서 국내외 수많은 어린이의 무료수술을 했지만 유독 북한 어린이들의 수술을 진행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1989년 연변 심장병 어린이 지원사업을 하면서 중국을 통해 북한 심장병 어린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여러 루트로 물색했으나 경색된 남북관계 탓에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평양에서 조용기심장전문병원 건립사업을 재개키로 함에 따라 이 병원이 지어지면 우리 병원도 참여하는 방안을 관계자들과 협의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남북 관계 관련 뉴스를 많이 봐서인지 북한 어린이들을 직접 진료하는 꿈을 자주 꿉니다.”

박 회장은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러나 꿈을 꾸고 열심히 달리면 그 엉뚱한 것이 실현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기자가 인터뷰를 끝내며 “(회장님의) 북한 심장병 어린이 진료의 꿈이 이뤄지길 응원한다”고 하자 독실한 기독교인인 박 회장이 “제 소망이 현실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박영관 회장은 △1939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1964년) △서울대 의학박사(1971년) △독일 뒤셀도르프대 심장외과학 연수(1975∼1977년) △인제대 의대 백병원 흉부외과 과장(1972∼1973년) △한양대 의대 부교수(1973∼1981년)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이사장(1982∼2003년) △대한흉부외과학회 회장(1998∼1999년) △사회복지법인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옛 한국어린이보호재단) 실행이사(1987∼2011년) △러시아 하바롭스크 ‘명예시민’ 추대(2009년) △‘부천 100인’ 선정(2014년) △우촌심뇌혈관연구재단 설립(2013년)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회장(2009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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