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특별한 등대 2곳… 연평도·팔미도등대

강승훈 | shkang@segye.com | 입력 2019-05-2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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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등대 전면. 인천시 제공
섬이나 항구, 해안선 등에 배의 항로를 표지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이 있다. 바로 등대다. 국내 북서부에 위치해 300만 인구를 자랑하며 국제도시로 변모 중인 인천시엔 특별한 등대 2곳이 있다. 팔미도·연평도등대가 그 주인공이다.

팔미도등대는 우리나라 최초 등대로 선보였다. 팔미도는 무의동 산373번지에 자리해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시간 가량이면 닿는다. 밀물과 썰물로부터 생긴 사주에 의해 연결된 두 개의 섬이 마치 여덟 ‘팔(八)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아 이렇게 불렸다.
 
이 섬의 중요성은 19세기말 우리나라를 넘보던 열강 제국들의 침략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876년 강화도 조약 뒤 1883년 우리정부와 체결한 ‘조일통상장정’ 내용 중 ‘우리 정부가 각항을 수리하고 등대와 초표를 설치한다’는 조항을 들어 1901년 등대를 건설하라고 강요한다.
 
그렇게 1902년 중구 차이나타운에 해관등대국을 두고, 그해 5월 팔미도등대의 첫삽을 떠 1903년 6월 1일 붉을 밝힌다. 그 당시의 모습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인천시 유형문화제 제40호’ 및 ‘등대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됐다.
 
특히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가장 중요한 작전으로 평가 받는 ‘인천상륙작전’이 팔미도등대 불빛에서 시작됐다. 과거 연합군은 빠른 조류와 큰 조수 간만의 차 등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인천항 초입에 설치된 팔미도등대 안내를 받아 무사히 작전을 성공한다.
 
연평도등대는 1960년 3월 연평도 서남단 해발 105m 지점에 마련됐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조기잡이 배의 길잡이로 역할했다. 하지만 등대 불빛이 간첩의 해상 침투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1974년 1월 가동을 멈췄다. 그전까지 등대지기가 있었다.
팔미도 내 신등대와 구등대 이미지. 인천시 제공
안보문제로 흔적만 남겼던 연평도등대가 45년이 흐른 2019년 5월 17일 다시 불을 밝혔다. 한달 전 해양수산부가 서해5도에서 일출 전 30분, 일몰 뒤 30분 등 1시간의 야간조업을 허용한데 따른다. 어민 안전어로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다. 해수부는 앞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남북 공동어로구역 추진 및 서해5도 야간조업 시행에 주목한 바 있다.
 
연평도등대는 최신형 등명기로 새롭게 거듭났다. 불빛이 약 20마일(약 32㎞)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안보상 이유로 북쪽을 향한 등대창에는 가림막을 갖춰 북한 땅엔 불빛이 보이지 않도록 조처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향후 인천항과 해주·남포항을 잇는 화물선 및 컨테이너 항로가 개설되면 연평도등대가 현지에도 빛을 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천=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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