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선택했다. 박 대통령은 29일 자신의 퇴진 요구에 대해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면 그 일정과 법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이같이 말한 것이다.
박 대통령에 대해 늦어도 오는 9일쯤 국회에서 탄핵을 추진하던 야당과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등을 포함한 정치권에 공이 넘어온 셈이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일당 국정 농단의 주범격 공범’으로까지 규정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임기 완수’ 등 강경 카드를 접고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민심을 따른 것은 긍정 평가할 만하다.
‘질서 있는 퇴진’에 주목하는 것은 국가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해법이라는 점에서다. 실제 전격적인 하야는 조기 대선으로 인한 정국 혼란이 우려되고, 탄핵은 불확실성이 너무 큰 데다 혼돈의 장기화가 불 보듯 훤하지 않은가.
이런 현실에서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 등을 포함한 자신의 거취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힌 점은 그나마 정국 안정의 로드맵이 제시됐다고 볼 수 있다. 관건은 야당의 대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3차 담화문 발표와 관련해 아무런 반성과 참회가 없다며 탄핵을 앞둔 교란책이고 탄핵을 피하기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당도 퇴진일정을 밝히지 않은 계산된 통치라며 탄핵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강경 모드를 지속하고 있는 야당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박 대통령이 구체적 퇴진 일정과 권한 포기 등을 밝히지 않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점 등은 유감이다. 하지만 야당은 탄핵 일정의 원점 재검토를 하길 바란다. 박 대통령이 초연하게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듯한 담화를 한 점은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안타까운 점은 전대미문의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에 따른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집권여당의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이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가 위상의 추락, 국정 공백의 최대 피해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친박(친박근혜)계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행태만을 보이고 있다.
친박이 진정 오늘날의 국정 혼란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사실상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하고 당이 앞장서서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식물 상태로 전락하고 국정이 마비됐으면 청와대보다 먼저 새누리당의 친박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상 지도부가 새로운 정치 활로를 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도의일 것이다.
물론 누구보다 박 대통령 자신이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여론과 정치권의 동향에 따라 ‘꼼수적 찔끔 대응’만 이어갈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에 대한 집착이 국정 공백을 장기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 의지를 분명히 하는 새누리당 탈당은 물론 2선 후퇴를 명백히 하는 게 온당하다. 국회 추천 총리에게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는 권한을 주고, 순조로운 정부이양에만 힘쓰는 게 온당하다. 19대 대선도 앞당겨야 한다.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대선을 앞당겨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게 민의에 부합한다고 본다.
이미 민심은 철저히 박 대통령에게 등 돌렸다. 박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독선과 측근 비리로 인해 4·19 혁명의 국민적 분노에 떠밀려 망명 끝에 비참한 종말을 맞았던 자유당 정권의 교훈을 되새기길 바란다.
여하튼 이제 정국 안정을 위한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겠다. 정계 원로들도 제시했던 바대로 박 대통령이 내·외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여야가 합의로 추천한 새 총리가 국정을 주도하는 거국내각을 속히 구성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작금 국가 표류를 맞고 있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은 사법적 징치를 하되, 국정의 안정을 하루속히 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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