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만 5세 초등 입학 추진
‘사교육·돌봄 부담 가중’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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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달 29일 브리핑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사진=뉴시스) |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최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교육부 업무계획에 ‘만 5세 초등 입학 학제개편안’ 등이 담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회적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은 “취약계층에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으나, 교사·학부모 등 교육현장은 물론 정치권, 시민사회까지 반발하며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 반대 여론 확산 일로
1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 중인 개정안 가운데 특히 ‘만 5세 연령 아동의 초등학교 입학’ 사안이 가장 큰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이번 정부 조치는 아동 발달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해당 연령대 아동의 경우 학습보다 돌봄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5·6세 2개 연령이 동시에 입학할 경우 입시·취업 경쟁률이 배가되고, 유치원 경영 악화로 폐원·실직 등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결국 이같은 안이 실제 추진될 경우 사교육과 돌봄에 대한 부담이 현행 대비 훨씬 커질 것이란 비판이다.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집단행동은 벌써부터 가시화되고 있다.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한 교육·보육·시민사회 단체들이 참여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가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방안 철회를 요구한다.
범국민연대는 교사노동조합연맹,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한국영유아교원교육학회, 전국유아특수교사연합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보육·유아교육·초중등 교사 단체부터 학부모 단체까지 총 36개 단체로 구성됐다.
이들은 “만 5세 초등 조기 취학은 유아들의 인지·정서발달 특성상 부적절하며,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시기를 앞당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금도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부모가 많은 상황에서 부담만 가중될 뿐”이라고 말했다.
앞서 교원단체들 역시 관련 성명 등을 통해 이번 교육부 방안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바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지난달 30일 정부 발표가 나자마자 성명을 내고 만 5세 아이들에게는 ‘학습’보다는 ‘돌봄’이 우선이라며 반대했다.
교총은 “(이번 추진안은) 유아기 아동 발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재검토돼야 마땅하다”면서 “현재도 개인 선택에 따라 초등학교 조기 입학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제개편으로 특정 시점의 학생이 두 배까지 늘 수 있다”며 “대폭적인 교사 수급, 교실 확충과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한 것은 물론 (개편 학제를 거친) 이들이 입시·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입을 수 있는 등 이해관계의 충돌, 갈등까지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지난달 31일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은 분명히 다르며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은 유아 발달을 무시한 정책”이라면서 “친구와 놀이로 관계를 맺고 성장할 유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학제개편 추진이 대학 입시 충격으로 이어져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제기됐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지난달 29일 논평에서 “한개 학년이 30만 명인 상황에서 조금씩 나눠 전환하는 방식으론 피해만 키울 것”이라며 “4년에 걸쳐 25%씩 전환하면 피해학생은 150만 명, 10년에 나누면 330만 명에 달한다. 이렇게 되면 피해학생들은 같은 학년이 최대 2배인 상황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편 학제가 도입되면 그해 만 5세·6세 2개 연령 학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고교를 거쳐 대입경쟁률이 2배 늘어나고, 결국 대학졸업 뒤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현재 운영 중인 유치원의 경영난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만 3~5세 유치원 입학가능 연령에서 만 5세가 초등학교로 빠지면 심각한 경영 위협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와 관련,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는 “지금도 유아교육기관은 저출산 영향으로 원아 수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개편 뒤 원아 수 급감으로 인한 경영난으로 폐원이 늘어나면 유아들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유아교사의 실직사태는 급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백년대계 교육정책’ 졸속 추진 비판도
한편 박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 앞선 브리핑에서 이번 학제 개편안에 대한 틀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교육부는 올해 말 학제 개편안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거쳐 내년 중 시안 마련, 오는 2024년 방안을 확정해 2025년부터 만 5세 아동의 초등학교 입학을 추진한다.
박 장관은 “순차적으로 4년에 걸쳐 입학 시기를 당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네 단계로 나눠서 할지 아니면 두 단계가 될지 세 단계가 될지는 달라질 수 있으나 합의가 된다면 2025년부터 조기 입학을 시행하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안 추진의 핵심은 ‘교육격차 축소’로, 정부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공교육 편입시기를 앞당겨 국가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학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아동에게 골고루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개편안이 당초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수렴 부족,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반발 등으로 실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기까지 큰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졸속 추진을 우려하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박 장관은 브리핑 당일 “학제개편과 관련해 여러 사안들이 있는데, 아직 교육청과 공식적인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학교 등 교육현장 최일선의 관리·책임 주체인 지역 교육청을 배제하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세밀한 정책 검토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번 개편안 추진이 윤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의 ‘산업인력 양성’이라는 교육철학에서 출발했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을 밝히면서 “산업계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책무”라고 말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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