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0만명이 법률상 근거 없는 고용형태로 일해
박원순 서울시장 훈령 통해 ‘공무직’ 명칭 첫 사용
스스로 신분 상승된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한 발상
진선미 국회의원 등 정치권서도 법제화 힘 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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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건 협의회 의장이 세계로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기계약직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세계로컬신문 김수진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이중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한 40만명의 무기계약직들은 '법률상 근거 없는 고용 형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법률적 지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직업인으로 이름을 달라”며 주장하고 있는 것.
이우건 전국지자체공무직협의회 의장은 “지자체가 훈령을 통해 공무직이라는 명칭을 무기계약직에게 부여하고는 있지만 명확한 상위규정이 없는 상태로 그 규율도 각 지자체에 따라 제각각이며 안정적인 고용지위 보장에 한계가 있다”며 “공무직이라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이야 말로 노동시장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선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 의장과의 일문일답.
- 만나서 반갑다. 전국지자체공무직협의회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1999년 3월 13일 서울시 내 지자체 일용인부들이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 우리 협의회의 시초다. 이후 2000년 처음으로 임금단체협의를 했고 이에 대한 결과가 2001년 나왔다.
이러한 상황이 타 지자체 쪽에도 전해지면서 어떻게 임금협상을 진행했는지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우리 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사실 공무원들은 지자체, 중앙정부 가릴 것 없이 단일화해서 큰 힘을 발휘하며 움직이는데 우리는 상급기관이 각각 다르다보니 그럴 만한 힘이 없었다. 우리 목소리를 하나로 낼 수 있도록 조직화한 게 바로 공무직협의회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4년부터라 보면 된다. 당시 무기계약직에 대한 법제화가 시작됐는데 부당한 상황에 놓이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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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이우건 협의회 의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방자치단체 공무직법제화, 함께 합니다' 글귀가 담긴 액자를 함께 들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 현재 지자체 무기계약직은 몇 명이나 되나?
현재 40만 여명 정도다. 하지만 일용인부로 봤던 과거에는 지금보다 3배는 더 많았다고 들었고 임금차별과 대우도 더 열악했다.
- 무기계약직 수가 줄었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2004년 정부가 무기계약직으로 분류할 당시 상시 지속적으로 2년 이상 지자체에서 근무하신 분들이 크게 정리가 됐다.
문제는 구분 기준이다. 250일을 기준으로 이보다 적게 근무하면 무기계약직화 되지 못했다. 사실 250일 이상 일하는 상용직과 별 차이 없는데도 억울하게 정리된 분들이 많았다.
당시 정부는 무기계약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만들면서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이들 중 소수만 무기계약직으로 돌리고 나머지는 계약직이나 기간제 형태로 내몰았다.
모호하면서도 비인간적인 기준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계속 고용을 위해 부당한 행위를 강요당한 게 사실이다.
- 그간 협의회의 성과는?
공무직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012년 5월 1일 서울시에서 공무직 훈령 1호로 ‘공무직’이라는 이름을 발표했다.
서울시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현재 전국 지자체 245곳 중 140곳이 이 이름을 쓸 정도로 우리의 존재를 단순한 무기계약직이 아닌 공무직이라는 직책으로서 인정하고 있다.
두 번째는 공무직 법제화를 위한 그간이 노력이다. 노동 운동가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법제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많은 국회의원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법제화에는 국회의원의 도움이 절실하다. 서울시의회에 우리 협의회 소개 책자를 들고 시의원부터 쫓아다녔었다.
우리의 절실함이 느껴졌는지 어느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라는 곳을 소개시켜주면서 진선미 국회의원을 알게 됐다.
다행히 진 의원도 우리의 문제를 이해하며 법제화에 힘을 실어줬다. 이밖에도 많은 정당의 시의원, 국회의원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어주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또 다른 성과로는 스스로의 힘을 길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무기계약직이나 비정규직들은 항상 억울하다고 말만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름’을 준다면 그 후에 어떻게 할 거냐고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설계할 힘을 갖췄다. 향후 공무직제가 될 경우 우리는 ‘현업직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봤다.
사실 무기계약직은 친분관계나 인맥을 통해 입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는 게 가장 시급한 상황이다. 그래서 2013년부터 서울시에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자를 선발하겠끔 자격증 위주로 입사를 하는 것으로 제도화했다.
스스로 당당한 자격을 갖추고 공공의 안정성과 대민 서비스 질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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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방자치단체 공무직법 추진 간담회에서 진선미 의원과 이우건 의장 등이 관련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전국지자체공무직협의회> |
- 그렇다면 기존 무기계약직에 대한 교육은?
현재 시범적으로 서울시 내 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직무향상 프로그램 교육을 실시 중이다. 2013년부터 자체적으로 사업소와 연계에서 직무 교육 중으로 성과가 있을 경우 전국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공유하고 확대할 계획이다.
타 지자체에서도 굉장히 호의적으로 교육 프로그램 자료가 완성되면 공유할 것이다.
-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가장 큰 틀 안에서 이야기하자면 공무원들이 가지고 있는 계급인식과 배타성을 들 수 있다. 공무원 영역 내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이들이 무척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책임을 누가 맡느냐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지자체는 ‘중앙정부에서 법 만들면 공무직으로 인정해주겠다’는 입장이었고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선발한 인원인 만큼 지자체가 해결하라’고 서로 떠넘겼다. 이걸 누군가가 주체가 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그런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임하면서 문제 인식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해결되고 있다. 또 이를 문재인 정부도 함께 공유하게 됐다.
- 무기계약직 스스로도 공무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나?
그렇다. 정부도 노력해야 하지만 노동자도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요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슈에 대한 가장 큰 문제는 ‘수직이동에 대한 너무나 높은 기대치’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공무원된다고 생각하고 신분 상승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선 안되며 무척 위험한 발상이다. 노동자 스스로 고민하고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그러한 부분이 생략된 채 무작정 ‘공무원, 정규직 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다보니 정부나 지자체, 나아가 국민과 감정적인 충돌이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공공부문의 정규직화에 대한 정책이 꽃도 피기 전에 시들까 심히 걱정된다.
- 사실 국민 입장에서는 예산편성 부분 등으로 우려하는 부분도 적지 않은데?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때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노동자 하면 현장에서 일하고 연봉이 많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히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특히나 공공의 안정성과 서비스가 강조되는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해서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쓰레기통이 조금이라도 더러우면 주변이 금세 더러워지고 깨끗하면 깔끔하게 유지되지 않나? 공공이라는 영역은 공공안정성의 기초적 부분이다.
공공 부문의 노동현장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따라 전 노동계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나 지자체의 행정 안정화가 되기 위해서는 질서부터 안정돼야 한다.
우리를 대하는 인식이나 수준이 낮은 것에 대해 이제는 분노하고 지적할 때라 생각한다.
물론 국민적 저항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상황이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한 실험대 위에 오른 것으로 본다. 공공부문 안정화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성과물을 통해 국민을 설득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진흙탕 속에 각각 가라앉아 있다가 막 떠오른 상황이다. 이 사람들이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물이 뿌옇게 됐다고 해서 사람들이 ‘나쁘다’고들 한다.
보수 언론이나 왜곡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때문에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잘 이해해줄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물이 깨끗하다고 해서 무작정 좋은 것도 아니고 물이 지저분해보인다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깨끗함을 향해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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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서울시지부 노동조합실에서 일본 법학자가 참여한 가운데 현 우리나라의 공무직 현실과 공무직 법제화 필요성 등에 대한 내용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전국지자체공무직협의회> |
- ‘불편한 정의’를 바르게 구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시간과 이해다. 지금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현 정부가 무척 현명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본다.
최저임금 1만원만 되도 임금 평등성에 맞춰 공공부문 예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또 국민께는 적극적으로 정책과 예산이 어떤 식으로 집행되는지 살펴봐줬으면 한다. 공공부문에 대해 국민들도 감시하고 공부해야 왜 우리가 공무직이라는 이름을 가지려 하는지, 비정규직 부문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에서 시작됐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정부나 지자체에 요구되는 부분은?
크게 3가지 정도가 있다. 먼저 현장에서 관련한 내용을 바로 집행할 수 있는 강제성이다.
얼마전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부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벌써 술렁이고 있다. 아마도 보다 세부 정책이 나오면 더 혼돈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정부 정책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은 필요하다.
또 정규직 전환을 하는 인원 수를 결정하는 예산의 규모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최근 강조되고 있는 실질적 지방분권과 정부가 향후 발표할 정책이 갈등 없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잘 조율해야 할 것이다.
- 좋은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겠다?
먼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부 및 지자체를 상대해왔다. 이러한 자세는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상대가 납득할 만한 이유와 대안을 제시하며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내겠다. 정책은 빛과 그림자와 같다.
하나의 정책을 제시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어디서든 발생하게 된다. 우리는 그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도 정부. 지자체와 유기적인 협의를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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