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관련 입증못한 ‘기타’ 처리 18% 넘어
부검 252건 분석결과 76% 사인 잘못기재
사체 검안비 10만~20만원선…의사들 기피
부족한 검안의·관심 부족…‘시체장사’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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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자 표시 모습. |
[세계로컬신문 유영재·김수진 기자] 상상을 해보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실종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 가족도 나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차가운 길 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이 비극적인 죽음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란다. 그런데 만약 사망원인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그대로 묻힌다면?
외로운 죽음, 변사(變死). 변사란 자연사가 아닌 원인으로 사망하거나 자연사가 아닌 의심이 있는 경우를 의미하며 이때 사망자의 사체를 변사자라고 일컫는다.
한해 발생하는 변사자의 수는 적지 않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변사 사건은 2014년 2만9000여건, 2015년 2만8000여건으로 매년 3만 여건 정도 발생한다.
한해 사망자 수가 약 25만 명인 것으로 감안하면 변사는 전체 사망자의 약 12%나 차지한다. 이중 신분이나 주소, 직업 등을 알 수 없는 신원 미상의 변사자는 전체 변사자의 0.3% 수준으로 한 해 평균 130명가량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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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 빈소 모습. |
발생 원인도 다양하다. ‘경찰의 변사자 처리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변사자 발생 원인으로 자살이 가장 많았고 그 뒤로 자동차 등 운수사고, 기타, 추락, 익사, 타살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변사자의 범죄관련 비율은 0.6%(2007년 기준) 정도지만, 범죄와 관련됐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해 ‘기타’ 처리된 변사 비율은 2007년 17.9%, 2008년 19.5%로 그 수치가 무척 높다.
또 변사자 중 부검 비율은 2006년~2008년 기준 20%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때문에 변사자가 어떻게 사망하게 됐는지 그 원인을 알아내는 검시관이나 검안의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특히 최근 지능범과 강력범죄의 급증은 변사자 발견 직후 꼼꼼한 사인 확인은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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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뒷모습. |
◆변사자 발견부터 부검까지
변사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지구대로 신고 된다. 변사자 발생 지구대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하고 현장보존 후 상급기관인 경찰서에 보고한다.
경찰서 형사과장(혹은 수사과장)이 담당경찰관을 지정하면 담당 사법경찰관리가 검시관 또는 지역 의사(주로 경찰공의)를 대동해 현장이나 변사체가 이송된 병원 등에서 검안(檢案)을 한다.
의사는 사체를 검안한 후 검안서를 작성하고 경찰관은 변사 발생 보고서를 상급지방경찰청과 관할 검찰청에 보고한다. 이때 변사자 부검이 필요한 경우 부검의견을 기재한 변사사건 발생 보고 및 지휘 보고서도 송부된다.
검사는 이 보고 내용을 검토해 직접 검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현장에 나가 다시 사체를 살펴보고 현장을 확인한다.
단 경찰 보고서에 의존해 부검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사체는 소정의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부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부검을 시행하라고 경찰에 지시한다.
경찰은 사체의 사진, 시체검안서, 관계자 진술조서 등을 서류로 꾸며 검증영장 신청서를 검찰에 송부하고 검찰은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법원에 청구한다.
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부검의를 선정해 부검을 의뢰하게 되고 이때 부검 의뢰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통상사건이 발생하고 부검이 이뤄지기까지 48시간에서 7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보면 된다.
경찰과 검찰 측은 변사체 발견 직후 이뤄지는 검시관 혹은 검안의의 빠르고 바른 판단이 사건 해결의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전문가 태반에 검안의 수 절대 부족
많은 전문가은 변사자를 가장 먼저 접촉하고 실제 검시업무를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이들이 비전문가인 점을 문제점으로 손꼽는다.
현행법상 변사자가 발생하면 경찰이 현장에 임장(臨場)해 변사자의 검안을 판단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변사자 조사에 필요한 법의학적 지식이나 경험을 갖추지 못해 정확한 사인 분석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경찰은 2005년부터 검시관을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청에 배치하고 있다.
검시관 제도는 변사자 의심이 있는 현장에 사법경찰관과 함께 임장해 조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업무활동 규정이 애매하고 일반공무원이기 때문에 수사에 책임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단순히 사법경찰의 보조적인 역할에 한정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사인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확인해줄 수 있는 검안의 부족도 큰 문제다.
의사들이 검안의를 꺼리기 때문이다. 변사자가 발견되면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야 해 상시대기가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검안비는 10만~20여만원(1회) 수준이다 보니 고급 인력 유치가 쉽지 않다.
사체를 확인해야 하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대우가 좋지 않은 만큼 젊은 의사들의 기피 경향도 크다.
때문에 현재 현장에서 활동하는 검안의는 그 수도 절대적으로 적고, 활동한다 해도 평균 연령은 50대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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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 간판 모습. |
◆“시체장사? 걸리면 재수 없는 거죠”
변사자 처리 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발견 직후에서 발생한다.
자연사인지 아니면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 죽음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현장 검증에서부터 검안의가 동행해 검의·부검과 관계자 조사 등 다각적인 조사가 필요하지만 검안의 부족 등의 이유로 현장에서 이러한 교과서적인 꼼꼼한 조사는 사실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사는 현장을 보지 못한 채 불충분한 정보만으로 경찰에 검안서를 써주게 된다.
실제로 전남대 의대 법의학교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09년~2011년 국과수에서 실시한 부검 252건을 분석한 결과, 사망진단서·검안서에 적힌 사망 원인과 부검 후 사인이 다르거나 사인이 잘못 기재된 사례가 76.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몇몇 검안의가 사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검안서를 작성한다는 점을 범죄에 악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2년 시신 목에 끈에 졸린 자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의사가 아들의 말만 듣고 ‘직접사인-노쇠’ ‘사망의 종류-병사’로 기재해 검안서를 작성했다가 장례식장 직원의 신고로 아들의 패륜 범죄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시신을 두고 뒷돈이 오가는 ‘시체 장사’도 암암리에 발생하고 있다.
몇몇 장례식장에서 변사자를 더 많이 받기 위해 경찰 무선 내용을 도청해 먼저 시신을 자신의 장례식장으로 옮기거나 아예 경찰이나 내부자와 결탁해 특정 장례식장에 변사자를 몰아주는 경우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변사자 시신을 유치하기 위해 서울 소재 한 장례식장 업주가 상조업체 직원과 경찰관 등에 약 1억9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건네 재판에 넘겨졌다.
또 지난 2014년 울산과 부산 등지에서 경찰의 무선 내용을 해킹해 변사자 위치를 먼저 파악해 사체를 자신들의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챙긴 장례업계 관계자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장례업계들이 변사자 잡기에 혈안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이 2004년 조사 결과 매장이나 화장 같은 장묘 절차 비용을 제외하고 장례용품, 조문객, 접대비용, 시설사용료에 드는 평균 비용은 930여만원이었다.
여기서 장례식장이 남기는 비용은 꽤 짭짤한 편으로 2014년 기준 국립대 장례식장 평균 이익률은 54.5%나 된다.
장례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유족 없는 변사자에 지원되는 국가 지원금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변사자와 같은 사체 장사 유혹을 받는 병원·장례식장이 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양서 특정 장례식장 ‘몰아주기’ 의혹?
얼마 전 경기도 안양시에서도 변사자 처리와 관련한 의심 정황이 포착됐다. 안양시에서 검안의로 활동 중인 A씨가 특정 장례식장에 변사자를 몰아준다는 의혹이 관련 업계에 퍼진 것.
해당 관할 경찰서 지침에 따르면 ‘변사자는 관내 장례식장에 순번제나 가까운 곳으로 이송’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검안의가 ‘가까운 장례식장’으로 보낸다는 핑계로 특정 업체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것. A 검안의는 해당 의혹에 대해 부정했다.
A씨는 “가까운 장례식장이나 유가족이 원하는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있으며 모 장례식장에 변사자 몰아주기는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경찰 측도 관련 의혹에 대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하고 나섰다.
관할 경찰서 관계자는 “검안의가 원하는 장례식장이나 병원으로 변사자를 모시려면 변사자 발견 현장에 검안의가 함께 동행해 유족을 설득해야 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며 “무연고 변사자는 연간 2~3건에 불가하다”고 일축했다.
본지가 관련 사안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 관할 경찰서에 지난해 변사자 장례식장 이송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통계 집계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한편 안양시의또 다른 경찰서의 경우 유족이 원하는 장례식장으로 이송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번제가 원칙이나 가까운 곳으로 부득이하게 이송하는 경우도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검안의 A씨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변사자를 몰아주고 있다는 특정 장례식장의 주주이며 그 장례식장 전임 대표가 심지어 전직 경찰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
여기에 검안의가 고령인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보자는 “A씨의 연령이 80세나 되는데 검안의로서 능력에 대한 제고가 필요해 보인다”며 “여기에 본인의 이권과 연결되는 장례식장 주주란 점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관할 경찰서 측은 “장례식장 주주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서도 “젊고 능력 있는 의사를 검안의로 모시기 힘든 상황에서 A씨를 대체할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법의학자 양성·현실적 지원책 필요
전문가들은 변사자 처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변사자 초기 대응에 대한 경찰 활동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체 사인 규명에 대한 검시 제도를 강화하고, 경찰청 및 경찰서 수준에서 수행하는 사체 취급에 대한 전문교육 과정을 신설, 관련 업무 담당자의 경우 교육과정 이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안의 질적·양적 확보도 시급하다. 변사자 죽음의 원인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검안의 인력을 확보하고 이들에 대한 계속적인 관리 및 현실적인 지원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또 검안의와 검시관의 도덕성이나 자질 여부도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검안의 확보는 법의학자 양성과 연결된다.
대한법의학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법의학자는 50여명에 불과하다.
조직화한 양성 체계의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국내 전문의 전문과목 중 법의학 분야가 없고 대신 병리학 전문의 중 일부가 법의학자가 되고 있다.
법의학자가 일할 곳이 없어 법의학에 관심이 있어도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아 교수가 적극 추천하지 않는다.
여기에 법의학 교실이 있는 대학도 10여 개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법의학자를 국가적으로 양성하고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법적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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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119구급대 차량. |
◆24시간 병원서 의사·검안의, 크로스체크 검안 시급
물론 검안의 양성과 전문 경찰 도입도 중요하다. 하지만 취재 결과 여러 단계의 검안 확인 과정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현재 최종 사인 여부를 결정하는데 검안의가 단독으로 진행하면서 사인 오류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혹여 발생했을 수도 있는 범죄도 묻혀버린다.
이 때문에 검안 시 검안의와 또 다른 의사가 함께 사인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보인다.
이를 위해 변사자 발견 후 검안의가 경찰과 현장에 동행해 24시간 상시 대기가 가능한 병원 중 가까운 곳으로 시신을 옮긴 후 검안의와 해당 병원 의사가 함께 사망 이유를 확인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의학 전문가들이 사인 여부를 크로스 체크해 변사자 발견 초기단계서부터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은 필수다.
또 경찰은 지역 내 중견급 이상의 응급시설을 갖춘 병원과의 공식적인 협조 체계 구축에 나설 필요가 있다.
변사자의 편안한 영면과 유가족을 위해 보다 유기적이면서도 명확한 시스템 구축에 우리사회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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