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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도리인데 그렇지 못하고 괴물이 되어버린 늙은이들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자기 마누라는 쳐다도 안 보면서 다른 여자가 얼씬거리면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어떻게 식사 한번 할까? 골몰하는 모습을 보면 배꼽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사실 남자 나이 팔순이면 고려장하고 남을 나이인데 ‘비아그라’ 먹지 않고 섹스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백세시대를 가는 현실은 팔순도 청춘이라 하드라만, 일 년이 지나면 아흔을 바라본다 해서 ‘망구’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 나이에 서른 갓 넘은 손녀 같은 여성을 탐하는 것은 유교 도덕의 기본 덕목인‘삼강오륜’을 떠 올리게 한다. 정치을 하든지, 학자가 돼서 교육에 전념하든지, 또 남자든 여자든 간에 자신의 꼬락서니를 알고 처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 정치인이자 역사가인 액턴 경(lord Acton)이 남긴 명언이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자만이 역사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자신도 지키지 못하면서 남을 통치하는 것은 후일 역사가 버릇을 고쳐줄 것으로 본다. 권력이 있으면 그 권력을 남용해서 젊은 여성들 치맛자락 붙들고 세월 보내라고 국민이 혈세 모아 준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가든 공직자는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권력의 끄나풀로 행세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온갖 모사를 일삼고 획책하며, 국민의 도덕관념을 훼손해서 어떤 결과가 오는지 자명한 일 아닌가.
노력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게 하고, 허황된 행위로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박탈감을 안겨 주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아파트 하나 마련하려면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시대를 가는 젊은 세대들이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까? 한탕주의 말고 또 다른 것이 존재하겠는가?
홍세태의 ‘늙은 말’이란 시다. “시골이라 어느 집에 늙은 암말 있었으니/ 천리마 망아지로 이 세상에 태어났네/ 갈기는 용의 갈기 털빛은 오색 화문(花紋) 신준한 그 골격은 세상에 또 없었네/ 남다른 그 생김새 촌사람들 알지 못해/ 서로 다퉈 빌려다가 섶 달구지 끌게 할 제/ 두귀도 축 처진 체 양 가는 길 소가는 길/ 날마다 험한 길을 몇십 리씩 시달렸네/ 서울엔 넓고 큰길 달림직도 하건마는/ 이 말은 촌구석에서 한평생을 마치었네.”
홍세태는 천성이 뛰어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에 중용되지 못하는 ‘위항인(委巷人)’으로 한평생을 가난과 울분 속에서 한스럽게 살다간 시인이다.
불우한 자기 신세를 늙은 말에 기탁 한 풍자 시다. 이렇게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는데, 권력을 가졌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지만 그 권력을 쾌락에 사용한 망나니들이 있다면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손윗사람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해오면서 정치 일선에서 느긋하게 미소를 던지는 위인도 있다. 왜 이 나라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같은 정치인이 없나? 앉으면 해 먹기 바쁘고, 앉으면 치마 들어 올린다. 권력을 사유화시키기 혈안이 돼 있고, 떠나면 금방 그 자리는 구멍이 생긴다.
지난 시절 ‘초근목피’로 겨우겨우 끼니를 연명해 나가던 때를 잊지 못하고 게걸스러운 탓일까? 지방은 한술 더 떠서 아예 파묻어 버린다. 사정이 이러니 외제 차 타고 목 돌리는 사람 보기 흔하다.
선진국? 권력의 안배가 선진화되는 것이 우선이다. 속담에 배부르면 벗은 여자 생각난다고 했나? 이성을 망각하면 개 와 다를 것 없다. 하기야 요즘 개는 필자 어릴 때보다 더 잘 먹드라만, 세상 변 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정치인들이 덕을 쌓지 못함과 아울러 문을 굳게 닫아 버리고, 미움을 참 마음으로 재생시키지 않으면 국가가 황량해 짐은 물론 정신적인 빈곤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가 지은 악업은 자신의 노력으로 참회하고 ‘신구의 삼업(신업,구업,의업)’이 맑아질 때 과보가 바뀌어지며, 행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늙은 말(馬)이 콩 마다할 리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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