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수필] 전화 한 통

수필가 민순혜
민순혜 기자 | joang@hanmail.net | 입력 2022-06-20 0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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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

               수필가 민순혜


한 해를 보내면서 뭔가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오랜만에 보문산으로 향했다.

보문산 공원 입구로 들어서자 12월 초이지만 보문산 기슭은 아직 겨울이 멀리 있는 듯 높고 푸른 하늘에 햇살이 따사롭고 오색 단풍은 향기를 내뿜는 듯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박 선생한테서 전화가 온 건. 그러잖아도 그녀에게 연말이니 식사라도 하자고 전화를 하려던 참이어서 반가웠다.


그런데 그녀는 잠시 머뭇대더니 팔목 관절 수술을 해야 하는데 마땅히 간병해줄 사람이 없다며 내게 간병을 부탁하는 게 아닌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즉시 대답했다.

 "응? 간병? 응, 내가 해줄게. 그런데 난 간병할 줄 모르는데 어떡하지?"


그러나 박 선생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팔목 수술이어서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서 왠만한 건 본인이 할 수 있을 거라며, 다만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라며 말끝이 흐려졌다. 그리고는 덧붙여 말했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 보호자가 있어야 한대요.” “아, 그렇구나.” 나는 박 선생에게 수술 날짜가 정해지면 연락하라고 말하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수술 준비만 잘하라고 했다.

 

▲ 사진=픽사베이

나는 그녀와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렸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그녀와 단둘이서이지만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캐럴이 들리는 아름다운 곳, 성심당 ‘삐아또’에서 거창한 송년 파티를 열곤 했다. 우리 둘만의 와인 두 잔, 리조또&필라프, 오일&크림파스타, 스테이크, 화덕피자 두 조각 등 주문하여 먹곤 했다. 그런데 수술을 한다니 정말 사람은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거 같다.


그렇더라도 내가 그녀에게 뭐든 해줄 수 있다는 건 다행이다. 그건 평소에 그녀에 대한 보답일 테다. 그녀는 전문직으로 연봉이 나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다. 뭐 꼭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녀는 때마다 나를 초대해서 영화를 같이 본다거나 공연을 관람하며 맛난 요리를 대접해 주곤 했다. 휴가 때는 국내외 여행을 같이 다니면서 우의를 돈독히 했다. 그러니 그녀에게 늘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수술한다고 하니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간병을 자청한 것이다.

며칠 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 오후에 입원한다며 이튿날 아침 8시 수술을 하는데, 수술이 끝나면 나는 바로 가도 될 거라고 했다. 팔목 관절 수술이어서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혼자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거라고. 사실 그녀는 여간해서 남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 편이다. 본인이 할 수 없다면 아예 포기하면 했지,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나는 그녀의 병실에 도착해서도 말 한마디조차도 조심스러웠다.

그녀가 입원해 있는 관절 센터는 신축 건물로, 병실은 6인실이지만 넓고 쾌적했다. 멀리 산봉우리가 보이는 전경이 확 트인 전망 좋은 곳이었다. 그녀가 내게 여행 가는 것처럼 3일간 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챙겨오라고 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실제 우리는 둘이서 자주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녀가 아프지만 않다면 그 시간 우리는 연말연시 여행을 떠나 어느 호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피우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곳은 병원이다. 옆 침대 환자는 수술을 막 끝내고 왔는지 연신 신음 소리를 냈다.

나는 문득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몇 년 전 모친이 노환으로 4년 여 노인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나는 병원에 오가면서 얼마나 많이 무섭고 두려웠던가. 나는 그 당시 365일 공휴일도 없이 매일 문병을 갔는데, 정말이지 어느 때는 모른 척 쉬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온종일 병상에 누워 이제나 저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모친을 생각하면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문병을 갔던 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어디 그뿐이랴. 모친 병실은 4인실 이었는데, 어르신 한분은 시골에 사는 남편이 매주 한 번 와서 잠시 있는 동안이라도 지극 정성으로 간병을 했다. 다른 두 분 또한 딸들이 거의 매일 간식이며 맛난 음식을 해 갖고 와서 먹여 드렸는데, 나는 기껏 빵이나 죽을 사다 드리는 정도였으니 옆에서 모친도 얼마나 드시고 싶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인다.

내가 잠시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박 선생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넌지시 말했다. “박 선생,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사다 줄까?” 그러나 그녀는 대답 대신 링거 줄을 바라보았다. 링거 옆에는 [금식. 물도 안 됨] 팻말이 보였다.

밤이 깊어질수록, 아니 아침이 가까워질수록 수술을 앞두고 담당 간호사가 수시로 들어와서 이것저것을 살폈다. 마취는 전신마취, 부분 마취 선택할 수 있고, 마취약도 무엇, 무엇이 있는데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다면, 상황에 따라 바꿀 수도 있다고… 창밖이 훤해 질수록 박 선생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녀는 애써 태연한척 애를 쓰는 모습이 더 애처로웠다. 그 순간 나는 무엇으로도 더 이상 그녀를 위해 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멍하니 그녀 옆에 서있기만 하는 내가 안타까웠다고 할까.

이튿날 오전 8시, 그녀는 예정대로 수술을 받고 다행히 회복도 빨라서 나는 병실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집에 왔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나의 서툰 간병이 그녀를 위해 충분히 해준 것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이렇듯 인간은 늘 부족했던 것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것 같다. 완전한 나를 위해 도전해보지만 역시 지나고 나면 좀 더 완벽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뿐이다. 박 선생한테서는 며칠 후 카톡이 왔다. 고맙다고, 맛난 식사 대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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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약력

 

대전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수필집 '내 마음의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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