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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장한 체격의 김종관 씨(69년생, 제주도 거주) 그러나 그는 군 복무 중 당한 사고로 후유증을 달고 살아가고 있다. 국가유공자심사에서 15년째 제외되고 있어 육신의 고통이 마음의 고통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
[세계로컬타임즈 김태형 기자] “국가는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국군의 위용과 발전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국군의 날’ 다음날인 10월 2일, 군에서 발생한 사고로 수십 년간 고통을 떠안고 사는 한 인물을 만났다.
그는 바로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김종관 씨(69년생, 제주도 거주)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까지 상경했다. 인터뷰 내내 ‘국군의 날’의 의미가 퇴색해 가고 있었다. 2021 세계 군사력 순위(GFP) 기준 세계 6위의 군사 강국 대한민국에서 상이군인에 대한 예우가 이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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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로 파절된 치아. 군 병원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적극적인 치료를 회피했다. |
김종관 씨는 1988년 징병검사를 받고 건강한 몸으로 89년 5월에 입대해 충청남도 홍성군에 위치한 000대대본부포대 소속으로 배치된 후 통신병으로 군복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91년 12월에 만기 전역했다. 그의 군 생활은 얼마 가지 못해 악몽으로 뒤바뀌었다. 입대 후 5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군부대 내 진지 구축 작업에 투입됐고 작업 중에 부상을 입었다.
김종관 씨는 “운전병이 군용트럭에 폐타이어, 폐목, 자갈, 흙 등을 실어 진지 구축하는 곳으로 옮겼다. 이를 내리기 위해 트럭으로 이동했고 운전병이 화물칸 안전핀을 뽑는 순간 트럭에 실려 있던 물건들이 나를 덮쳐, 그 충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었다”고 당시 사고 상황을 설명했다.
군 동료들은 김 씨의 입에서 피와 흙을 닦아 내고 부축해 의무실로 이동했다. 의무병으로부터 손목 부목 고정과 치아 흔들림을 확인하고 소독한 후 대전통합병원으로 이송했다. 당시 군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이걸 아프다고 해서 왔냐?”는 면박을 받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대로 복귀했다고 김 씨는 주장한다. 다행히 포대장의 배려로 행정적 제약 없이 부대 인근 홍성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치료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심한 통증에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만 했다.
치아 손상뿐 아니라 손목 부상으로 인해 생활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오른손 충격으로 인해 근육 떨림이 심해졌고 각종 보수, 유지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일상생활인 세탁, 세면, 식사조차도 불편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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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아 상실과 치조골 손실. 치료 적기를 놓쳐 결국 이가 빠지고 하악 치조골까지 손상을 입게 됐다. |
김 씨는 “지금도 손을 쓰는 체육 활동이 어렵다. 손에 무리가 가면 근육통과 떨리는 증상 등 후유증이 남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손에 불편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당시 상황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진술은 많다.
우선 공군제2방공유도탄여단장의 2020년도 ‘조사사실확인서’에서 “000 중위가 본부포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군부대 내 폐타이어 방어 진지 구축을 하는 과정에서 운전병이 화물차량 뒷문의 핀을 뽑는 순간 적재된 화물이 하중에 못 이겨 넘어오면서 당시 김종관 이병은 오른쪽 손목과 하악골 치아외상을 입고 즉시 자대 의무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음. 이후 국군대전통합병으로 후송돼 입원 치료한 사실을 확인함”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다수의 동료들 또한 사실확인서와 인우보증서를 통해 같은 내용을 진술하고 있다.
치아 상실로 인해 저작기능과 언어 장애로 직업 선택의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
사람을 대면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발음이 정확지 않아 장애인으로 오인하는 일도 잦았다.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와중에 지인들로부터 국가유공자등록신청 제안을 받아 2006년부터 약 15차례나 신청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하고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야만 했다.
부상 사고 이후 그는 우측손목 손상, 오른쪽 무릎 관절 손상, 저작기능장애, 언어장애, 측두하악장애, 하악 무치악 치조골 상실 등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국가보훈처에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치 의무기록지와 요양급여내역을 제출했다. 또한 진정서, 부대장 확인서, 조사사실확인서, 건강보험요양급여내역, 치아 관련 의료 자료 등 국가보훈처가 요구하는 자료는 모두 제출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15년 동안 문을 열어 주지 않고 있다.
김종관 씨에게 남은 희망은 국민권익위원회다.
권익위는 지난 2016년 4월 26일 ‘군 복무 중 부상, 가해자 증언으로 입증되면 보훈대상자로 인정 타당’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보도자료와 유사한 사건으로 고통받는 상이군인에게 희망을 주었다.
보도자료의 사례는 이렇다.
김 모씨는 1982년 동계훈련 중 소대장으로부터 음낭을 걷어차여 한쪽 고환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응급 및 통원치료를 받았다. 김 모씨는 제대 후 보훈청에 보훈대상자 신청을 했으나 보훈청은 당시 군 의료기록이 없어 군 복무 중 부상 여부를 입증할 수 없다며 ‘보훈대상자 비해당’ 처분을 내렸다. 이후 당시 목격자인 동료들의 인우보증을 받아 보훈청에 보훈대상자 신청을 했으나 같은 이유로 또다시 ‘보훈대상자 비해당’ 처분을 받았다(중략).
권익귀 관계자는 “군 복무 당시 의료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에도 인과관계를 상당부분 인정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보훈 대상자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김 모 씨의 사례처럼 김종관 씨의 경우도 유사하다.
군 병원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아 부상 전후의 기록을 모조리 제출해야 했으며 그런데도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다는 결론만 되풀이됐다. 권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러한 군 기록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김 모 씨 사례를 ‘보훈대상자 여부 재심의’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김종관 씨는 “제 치아 상태를 의사에게 조언만 받아도 언제,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보훈심사위원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며 “다행히 권익위에서 제 사건을 검토 중이다. 보도자료의 경우와 유사하다. 저와 같은 억울한 사람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 국가는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아직도 군 의료 시스템에 불신이 깊다. 80~90년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군사 강국에 걸맞은 상이군인에 대한 예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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