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방자치 역사와 문제점
선거공약이나 인간적인 흠이 많았지만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갖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출범시켰다가 실망한 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된 지 올해로 3년차에 들어섰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이 참패하고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사실상 싹쓸이 했다. 그래도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질문조차 사치라고 여겨지는 실정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새해 벽두에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 4대 그룹 총수 등이 참석한 신년회에서 ‘국민이 함께 잘사는 사회’ 첫 해로 만들겠다면서 경제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선거공약과는 무관하고 중앙정치에 크게 연동되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정당이 몰표를 받았고, 이번에는 진보정당이 주요 지역을 석권했다. 지방의 경우에도 보수정당은 소위 말하는 ‘대구·경북의 성지’라고 불리는 대구와 경북조차도 위태로운 지경까지 내몰렸다.
1991년 지방자치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후 27년이 흘렀고, 주민들은 스스로 7회 이상 자치단체장과 자치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지역을 잘 아는 일꾼들이 지역 실정에 맞는 정치를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를 달성한 자치단체는 찾기 어렵다.
지난 27년 동안의 지방자치로 인해 지역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했거나 주민들의 자치행정 만족도가 높은 지방은 전무한 실정이다. 주민 모두가 불평하고 불만족스러운 지방자치를 ‘풀 뿌리 민주주의’의 전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속해야 할까?
2017년 5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행정권 이양을 통해 지방분권을 강화하겠다고 주창하고 있지만 다양한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의 역사, 문제점, 해결방안 등을 자세히 살펴보자.
▶ 자치권 얻기 위한 투쟁·희생 없어 권리를 그대로 넘겨
한국의 지방자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9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곧바로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최초의 지방선거는 1952년에 실시됐다. 당시에는 지방의회 의원만 선출하고 단체장은 중앙 정부가 임명했다.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학생혁명 이후 자치단체장까지 선거로 선출하기로 결정했지만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좌절됐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헌법을 개정하면서 지방자치가 25년의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1991년 노태우 정부는 기초 자치단체와 광역 자치단체 의원 선거를 도입하며 지방자치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본격적인 지방자치는 1995년 6월 기초 자치단체와 광역 자치단체의 의원과 단체장을 직접 선출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95년 이후 23년 동안 지방행정은 발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뒷걸음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치단체에게 지역실정에 맞는 행정을 집행하라고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정작 중앙 정부에 예산을 의존하고 정책 코드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행정이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바텀업(Bottom-up)’방식이 아니라 ‘탑다운(Top-down)’방식에 익숙해진 것도 눈치만 보는 행정을 양산한 원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치행정이 왜 어정쩡한 형태로 맹탕이 됐을까? 지방자치가 잘 발달된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자치행정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투쟁과 희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일본 제국주의를 한반도에서 축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미국의 정치제도가 자연스럽게 이식됐다.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 본 적도 없고, 지방자치와 재정 독립을 얻기 위해 중앙 정부와 ‘전쟁’을 벌여본 적도 없다. 주민들도 지방자치권을 얻기 위해 희생을 분담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하고 있다.
감나무에서 아래를 지나다 우연히 떨어지는 감을 얻은 것처럼 쉽게 시작한 지방자치는 태생적으로 중앙정부와 정치로부터 종속, 지방 토호의 부정한 개입, 지방재정의 열악 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점을 원초적으로 내재하고 있었다.
이승만 정부에서는 고무신 한 켤레, 막걸리 한 잔에 투표권을 헌신짝처럼 줘버렸고 1995년 이후에도 이러한 관행은 변하지 않았다. 유권자에게 살포하는 현물이 고무신과 막걸리에서 현금과 이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주민들이 눈앞의 사소한 이익을 탐해 권리 위에서 낮잠을 자는 수준을 넘어 권리를 팔아넘기고 있다.
▶ 지방자치 문제점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 미래 없어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지방자치의 문제점은 해당 지역 주민과 공무원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주민들은 지방자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권을 얻었기 때문에 자치의식이 부족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지역을 망치는 근시안적이며 이기주의적인 민원을 제기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지역발전과 지역행정의 정상화를 위해 자신이 부담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이 권리를 남용할 때 지방 공무원과 토호세력도 제사보다는 젯밥에 눈독을 들여 나눠먹기에 급급했다.
중앙정부에 재정을 종속당한 열악한 상황에서 지방 공무원이 의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아 패배주의에 빠져들었다. 지역에서 건전한 여론을 주도하고 발전지향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하는 오피니언 리더들도 중앙 정치인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이득을 얻어먹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지난 27년 동안 지방자치는 낮은 행정 효율성, 부정부패, 낮은 재정자립도 등으로 인해 침몰 직전의 난파선과 같은 상황에 내몰려 있다.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 지방자치의 문제점과 초래 원인
첫째, 전시행정 위주의 예산집행, 자치단체장의 경영마인드 부족, 사회변화에 대한 대처 부족으로 행정서비스 만족도 저하 등으로 행정 효율성이 낮아졌다. 지역에 소재한 기업을 우대한다며 능력도 없는 업체에 끼리끼리 일감을 몰아주고,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도로 공사와 같은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만 성행했다.
자치단체장 선거도 중앙 정부에서 퇴직한 공무원, 지역의 토호세력, 자치단체에서 퇴직한 공무원, 중앙 정계에서 은퇴한 정치인까지 뛰어들어 난장판이 됐다. 이미 실패를 경험한 정치인과 공무원이 오히려 ‘인물론’을 내세워 지방정치를 좌우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경영’이라는 용어조차 어려운 정치인들이 집합장소가 되면서 행정 효율성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모습이다.
조직관리나 예산집행을 위한 비용편익분석(B/C분석) 등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단체장의 행정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는 없다. 글로벌 디지털 혁명시대에 아직도 땅을 파고 건물을 짓는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개발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둘째, 부정행위 심각성과 부패 연루로 인해 업무공백 확대, 능력보다는 인맥을 우선시함으로써 공무원 사기 저하 등 자치단체 내부가 썩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체장과 의원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이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천권을 남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관행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아닐 것이다.
매관매직처럼 보이는 모습은 드러나지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자행한다. 다수의 후보자에게 돈을 받는 ‘영업 행위’도 확산돼 있어 수사기관의 수사와 이에 따른 형사처벌 등은 피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고소, 고발이 난무하게 돼 자연스럽게 관련자들의 업무공백도 생길 수 밖에 없다. 정상적인 행정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피해는 그대로 지역주민에게 돌아간다.
자리를 산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본전을 찾기 위해 이권 사업에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무원 인사권을 매개로 수익을 챙기는 행위도 발생하고 있다. 지방 공무원의 부정행위가 심각하고 능력보다는 부정 여부가 승진을 좌우한다면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공무원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셋째, 재정이 부족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고 재정확충을 위한 아이템 발굴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지역 경제 기반이 붕괴되고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열악해진 지방재정은 파탄이 우려된 지경이다.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교부금을 제외한 자체 수입만으로는 공무원 봉급도 주기 어렵게 된다.
지역의 인프라가 낙후되면서 기업이 떠나 지방세마저 줄고 있다. 사기 저하된 공무원들에게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심각성이 방치된다면 자치단체장과 지방 공무원들은 중앙정부의 교부금만 쳐다보고, 예산철만 되면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와 국회에만 기대는 신세로 전락할지 모른다.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드는데 눈에 보이는 도로나 건물을 짓는데 예산을 낭비하는 것도 근절해야 하는 행정이다. 하루에 자동차 1대도 다니지 않고 농사짓는 경운기나 다니는 농로를 2차선으로 확·포장하고, 주민들도 방문하기 힘든 외곽지역에 호화 청사를 짓는데 수백, 수천억 원을 투입하고 자랑하는 자치단체가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지방자치행정의 문제점은 낮은 행정 효율성, 부정부패 만연, 낮은 재정자립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영마인드 없는 무능한 단체장, 자신의 기득권만 챙기겠다는 지방의원, 적당히 시간만 때우면서 월급이나 받겠다는 공무원, 공약에 빠져 투표권을 내주는 주민 등과 더불어 예산만 던지고 ‘수수방관’하는 중앙 정부와 정치권은 모두 공범 같다. 지적한 문제점을 모두가 합심해 풀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정치·행정 미래는 어둡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 / 민진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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