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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남기(가운데) 경제부총리는 25일 정부 브리핑에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제 위상을 감안해 향후 WTO(국제경제기구) 협상에서 개발도상국(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995년 WTO 가입 이후 24년 만에 사실상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게 됐다.
발표 전부터 이미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진 가운데,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국내 농업경쟁력 강화에 모든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 한국 경제 위상 고려…“쌀 등 농업분야 개도국 특혜 유지”
25일 홍 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 열린 브리핑에서 “앞으로 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쌀 등 민감한 품목의 협상권한을 별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특히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볼 때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도국 지위 포기가 한국의 대외 위상을 감안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실제 WTO에 속한 총 164곳 가운데 한국은 ‘주요 20개국 협의체(G20)’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자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등을 동시에 충족하는 9곳 국가에 포함된다.
다만 홍 부총리는 쌀 등 민간품목을 포함한 농업과 관련해선 기존 협상을 통해 확보된 개도국 특혜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미래협상이 타결돼야 (한국의) 개도국 특혜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그전까지는 국내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며 “미래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 이에 대비할 시간과 여력은 충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농민들은 정부의 개도국 지위 포기가 생업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강력 반발한 바 있다. 당장 타격은 없더라도 미래협상 타결 시 그간 농민들이 받아온 관세·보조금 등 혜택이 대폭 줄어들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농업경쟁력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정책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각오다. 한국 농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미래 WTO 농업협상에서 쌀 등 국내 농업의 민감분야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미래협상 결과 국내농업에 영향이 발생할 경우 피해 보전대책을 반드시 마련하는 한편,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농업의 경쟁력과 체질 강화는 지금부터 꾸준히 추진해야 할 최우선 과제인 만큼 여기에 정책역량을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증액을 통해 농업인 소득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형 직불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공익형 직불제’는 WTO가 규제하는 보조금에서 제외된 만큼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홍 부총리는 “앞으로 농업인 소득안정 및 경영안정을 적극 지원하고, 국내 농산물의 수요기반을 넓히고 수급조절기능을 강화하겠다”며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에 필수인 청년 후계농 육성도 적극 추진해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의 이번 개도국 포기는 피해를 입게 될 농민들의 피해 보전은 물론, 한 단계 차원을 넘어 미래 한국농업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 “개도국 특혜 비정상” 노골적 미국 압박에 ‘실리’로 대응
한편, 이 같은 정부 발표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발언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노골적인 압박에 ‘실리’로 대응했다는 평가다.
앞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7월 말 경제발전 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WTO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향후 WTO가 90일 내 이에 대한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미국 차원의 개도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최근 WTO 내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들도 한국의 개도국 특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위상이 비슷한 싱가포르, 브라질, 대만 등 다수 국가가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 시점서 개도국 특혜 결정을 미룬다고 하더라도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에게 개도국 혜택을 인정해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결국 결정이 늦어질수록 대외적 명분과 협상력 모두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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