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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수 언론인. |
1990년대 초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모래시계’에 이오지프 코브존(Iosif Kobzon)이 부른 ‘백학(白鶴 ‧ Cranes)’이 삽입곡으로 나온다. 러시아 가수의 그 노래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백학은 원래 러시아 민요가 아니다. 19세기부터 인종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체첸 국민들의 한이 서린 민족음악이다. 체첸(Chechen)은 체첸 인들이 체첸 어를 쓰는 러시아남부의 평화로운 나라였다. 그러나 러시아제국에 강제로 합병돼 자치공화국이 되었다가 94년 러시아군이 장악한 뒤 체첸 반군들의 폭탄테러가 끊이질 않았다.
이슬람국가인 체첸의 젊은이들은, 고국 체첸이 아닌 구 소련군에 입대해야만 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아 훈련을 모진 매로 때웠다. 전쟁이 나면 최 일선에서 총알받이 신세가 된다. 그러다가 전사하면 넋이나마 고국 체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원혼(冤魂)은 백학이 되어 훨훨 날아온다고 믿었다. 그 한 맺힌 노래를 부르던 이오지프도 한때 ‘반체제 인사’로 쫓기는 몸이 되어 이웃나라를 떠도는 신세가 됐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서부 네바다 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참사가 벌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자가 늘면서 사망자 59명, 부상자도 515명으로 불어났다. 경찰은 “범행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외로운 늑대’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외로운 늑대(Lone Wolf)’란 당초 1996년 러시아 남부 카스피 해 연안 다게스탄(Dagestan)공화국을 기습한 체첸 반군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를테면 극우단체에 의해 생긴 ‘자생적 테러리스트’다. 당시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선동하면서 외톨이 늑대라는 표현을 처음 썼다. 이들의 테러는 테러 감행 시점이나 방식에 대한 정보 수집이 어려워 예방이 쉽지 않다.
CNN에 따르면 64세 백인 남성용의자 스티븐 패독(Stephen Craig Paddock)은 이날 밤 10시 8분께 만달레이 베이(Mandalay Bay) 호텔 32층에서 음악 축제가 한창인 지상 콘서트 장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다. 오죽해야 뉴욕타임스는 ‘폭우(Rain)처럼’ 이란 수사를 썼을까. 패덕의 호텔 방에는 10여정의 총기가 함께 발견됐다.
2000년대 이후 미국에서 탄생한 외로운 늑대는 주로 이슬람 계 젊은이들에서 많이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2009년 텍사스에서 민간인·군인 13명을 죽인 이는 팔레스타인 출신 군 정신과 의사였으며, 같은 해 뉴욕 지하철 폭탄 공격을 계획했던 20대 젊은이는 아프간 계였다. 2010년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차량 폭탄 테러를 시도했던 파키스탄 계 청년은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딴 금융 분석가였다.
전문가들은 이슬람 계 청년들이 외로운 늑대가 되는 이유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과 이민자로서의 고립감을 꼽는다. 미국 언론은 범행동기로 이슬람과 미국이라는 두 세계가 충돌하는 데서 느끼는 정체성 혼란과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민자로서의 고립감을 지목했다.
범행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패덕의 형제는 그가 2자루의 권총을 갖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용된 속사무기에 관해서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은행 강도 등으로 FBI의 10대 지명수배명단에 올랐던 인물로 밝혀졌다. 패덕은 수 년 동안 여자 친구와 은퇴자 마을인 리노(Reno)에 살았다. 이웃과의 교류는 없었으며, 블라인드를 닫은 상태로 살았단다. 회계사 출신으로 부동산 다수를 보유한 채 이혼하고 동거녀와 도박을 즐기며 평범하게 지내고 있던 패독. 그러나 범행을 추정할만한 단서가 없어 여유로운 은퇴자가 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 동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차피 ‘늑대’에겐 국경도 국적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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