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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식 칼럼니스트 |
술은 인간 삶의 애환을 상징한다. 술은 고금동서에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사랑을 받아 왔지만 경원시되기도 했다. 자연 술에 얽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景公)이 어느 날 밤 술이 거나한 채 명재상 안자(晏子)의 집을 찾았다. 안자는 문신의 의관을 갖추고 경공을 맞이했다. “밤중에 웬 행차이십니까?” “그대와 술을 한 잔 하고 싶어서지.” 안자는 정중히 거절했다. 경공은 이번엔 장군 양저(穰?)의 집으로 갔다. 양저는 갑옷과 투구에 긴 창을 들고 맞이했다. 경공은 안자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양저도 예를 갖춰 거절했다.
■경공과 명재상 안자의 교훈
경공은 하는 수 없이 양구거(梁丘據)라는 신하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양구거는 손에 악기를 들고 노래를 읊으며 주군 경공을 맞아 대작했다. 경공은 흡족해 하며 “안자가 정치를, 양저가 국방을 잘 보아주고, 또 양구거 같은 신하가 있어 나를 즐겁게 해주니 난 참 행복하도다”라고 말했다. 한나라 때 설화집 ‘설원(說苑)’에 나오는 이야기다. 술의 순기능을 말한 것이다.
우리의 문단사를 보자. 현진건은 1920년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 1921년 발표한 '빈처'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백조' 동인으로서 '운수 좋은 날', '불' 등을 발표해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를 개척한 분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7,8년 전이지만 남편이 바로 동경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같이 있어 본 날은 남편이 중학을 마쳤을 때의 일 년이 고작이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비단옷도, 가락지도 더 이상 부러워 할 필요 없을 테니까 공부가 무엇인가 그마저도 아내는 몰랐지만 알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었건만, 아내가 보기에 남편의 행동은 공부라는 것을 하지 않은 이들과 다르지 않다. 남은 돈벌이를 하는데 남편은 도리어 집안의 돈을 쓴다는 것이 다를 뿐 어딘가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무슨 책을 보기도, 무엇을 쓰기도 해 그저 그것이 부자가 되는 방법인가 보다 아내는 믿고 있었다. "아야." 홀로 바느질을 하던 아내는 손톱 밑을 찔러 신음했다.
상처를 눌러보지만 피는 멈출 듯 계속 비치어 나온다. 늦은 시간 텅 빈 방안에 아내는 그렇게 남편을 기다리며 그림자에 휩싸여 있다. 남편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을 때, 구역질나는 술 냄새와 돌아온 남편을 간신히 부축해 방에 들였다. 옷을 벗고 누우시라는 아내의 애원에도 남편은 벽을 타고 내려앉아, 못 가누는 몸은 벽에 들러붙어버렸다.
남편은 사회에 대한 불평들을 늘어놓았지만, 그것이 아내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요, 오랜 기간 참아온 마음을 더 어지럽게 하는 것이었다. "너 같은 숙맥더러 그런 말을 하는 내가 그르지. 너한테 위로를 얻으려는 내가 그르지". 남편은 사과하며 말리는 아내를 떠밀며 다시 집을 나섰다. 남편의 구두 소리가 사라지고, 새벽바람이 싸늘하게 부딪힌다. 죽은 사람에게나 볼 수 있을 해쓱한 얼굴로 아내는 절망에 가득 차 소곤거린다.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 고!“
■무조건 추종하는 이념 진영
작품이 공개된 것이 1921년이고 작가가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학을 졸업 후 귀국했다고 하니 '술 권하는 사회'는 일본과 중국에서 유학했던 작가 본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아내의 맹목적인 기대와 그 대상인 남편의 무력함은, 소설 속에서도 남편이 몇 번이나 외쳤듯이 답답하다. 이렇듯 작가가 끝없이 수동적인 인물들을 그려낸 이유는 부조리한 사회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던 작가의 한탄이었을 것이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남편'은 지식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ㅍ술에 거나하게 취해 아내에게 조선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대목이 소설에 나온다. 남편의 어려운 말을 당연히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러나 남편의 유학을 위해 내조했던 아내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아내에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답함을 느끼고 집에서 뛰쳐나가버린 남편은 올바른 지식인인가.그렇다면 지금은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닌가.
작품이 발표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세대 간의 분열, 남녀 갈등,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이념의 진영 논리에 빠져 서로를 혐오하고 갈등하는 세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스러운 시대는 아닌지 , 여전히 우리는 싸우고 헐뜯고 상대방을 밟고 오르려 한다. 일제강점기도 아닌데, 민주화의 시대가 정착 되었고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이 시대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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