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수 언론인. |
신화에 따르면 일본의 조상신(神)은 천조대신(天照大神)으로 여성이다. ‘천조대신’이니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일본발음)’니 하며 한때 우리도 일제강점기 땐 천황가의 조상신을 그리 섬기도록 강요받았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서울의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을 때 천조대신은 메이지 천황과 더불어 제신(祭神)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역사도 있었다.
일본 천황(天皇‧우리는 ‘일왕’으로 불러야)은 성(姓)이 없다. 신적(神的)인 존재이거나 신(神)과 인간의 중간정도로 예우해서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때 일본을 항복시킨 점령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천황은 결코 신이 아니다”라고 깡그리 무시한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필자도 역시 왜정 때 태어나 이른바 ‘소화(昭和) 18년(1943년)생’으로 당초 출생신고가 돼 있었다. 소화란 일본 왕의 연호다. 불문곡직하고 나름대로 최고란 뜻이 함축돼있다. 지금 왕의 아버지인 히로히토(裕仁)왕의 연호다. 1989년도가 소화64년이 되는데 그해에 히로히토가 죽자 아들인 아키히토(明仁)왕이 즉위하면서 같은 해 즉 1989년부터 연호는 ‘헤이세이(平成)’로 바뀌어 올해가 헤이세이 29년이다.
일왕 탄생일은 공휴일이다. 선왕 히로히토의 생일이 4월인데 반해 아들 아키히토는 생일이 12월 23일. 크리스마스가 휴일로 지정되지 않은 일본에서는 성탄절 이브 전날이나마 하루를 쉴 수 있어 특히 젊은이들은 환영이다. 오죽해야 “하루 빨리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았으면”하는 염원도 있었다니 설마 사실일까 마는 그럴법하다.
일본은 왕이 죽으면 일왕의 최고 자문기관인 추밀원에서 제일 먼저 연호를 정한다. 밤을 세워가면서 동서고금 가장 좋은 말을 골라 그럴듯한 연호를 만들어 공표한다. 명치(明治), 대정(大正)에 이어 소화, 평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소화는 원래의 연호가 아니다. 한 일간신문기자가 추밀원의 요리사로 가장하고 몰래 들어가 연호를 특종 보도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연호는 ‘광문(光文)이었다. 아침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다음 연호는 ’광문‘’이라고 나가자 “천기를 누설했다”하여 추밀원은 즉각 재소집 되고 ’소화‘로 바꾼다. 사상초유의 특종이 엄청난 낙종으로 돌변한 것이다. 신문은 사과문을 내야만 했다. *그 신문이 요미우리(讀賣)로 기억되는데 확인이 어렵다.
일왕은 어찌 보면 놀고먹는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제사만 해도 연간 423번을 치르는 참으로 고된 ‘임페리얼(Imperial) 직업군’에 속한다. 궁성 안에도 논밭이 있어 손수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워 일상생활을 물론 제사 때 음식을 자급자족한다. 넉넉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주말도 없이 일하고 여름과 겨울 단 2주의 휴가가 주어질 뿐이다. 공사다망한 가운데 백성들로부터 받는 편지에 일일이 수기 답장을 하고 그 우표 값만 해도 지출의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하니 짐작이 간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지난달 20일 옛 고구려 왕족을 기리는 고마(高麗·‘고구려’를 뜻함)신사를 참배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 땅에서 1300년을 ‘고구려’가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일본천황은 1년 365일 중 250~270일을 공식 일정으로 보내기 때문에 개인여행을 즐길 기회는 1년에 한두 번에 불과하다.
일왕은 평소 일본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한일 고대 교류사에도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전쟁을 벌인 동남아 각국과 남태평양 섬들을 순방할 때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가 묵념하기도 했다.
올해 만 83세인 그는 옥스퍼드大 어류(魚類)학 박사 출신이며 사상 처음 생전에 왕위를 물려준다고 선언한 바 있다. 2019년 3월 31일 퇴위하고 장남인 나루히토(德仁·57) 왕세자가 이튿날인 4월 1일 즉위하는 방향으로 일본 정부가 최종 조율을 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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