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영수 언론인. |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을 건너뛰는(우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There will be no skipping South Korea)”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한국 기자가 “한국 경시 논란이나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불식됐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묻자 “한국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그 부분은 바로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도 모르겠고 뜻도 모를 않은 콩글리시(Konglish)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 잊을만하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는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 또한 코리아 패싱이다. 지난 대선정국 때 대북 외교에서 북한 및 주요 강대국에게 한국이 소외당함을 가리켜 자조적으로 쓰기 시작한 말이다.
영어의 문법상으로도 맞지 않는 용어다. 아마도 ‘한국이 소외당하고 있다(Korea has been passed over)’라는 표현을 줄여 말하고자하는 모양인데 ‘저팬 패싱(Japan Passing)’에서 빌려다 쓴 게 아닌가 싶다. 일본이 한참 잘나갈 때 경제 성장에 조바심 낸 미국이 일본 때리기에 쓴 용어라는데 실제로는 미국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일본 자체에서 자기비하의 의미로 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 들어 한국이나 미국의 대통령이 한꺼번에 바뀌면서 외교와 안보의 공백상황이 불투명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코리아 패싱이라는 용어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무책임한 주장은 외교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칫 냉소적인 비아냥거림으로 들릴 수 있다. 하긴 ‘저팬 나씽(Japan Nothing)’ ‘저팬 배싱(Japan Bashing)’ 따위의 ‘재플리시(Japlish ‧ 일본식 영어)’도 있긴 했다.
최근 들어 한국 매체를 제외하고 실제 국제 외교 상황에서 이 같은 용어가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용어의 원조 격인 일본에서조차 코리아 패싱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버블이 붕괴되고 사회적 모순이 폭발하던 90년대의 일본이 한창 자조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같은 용어들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코리아 패싱이란 한국의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외교적 실책, 국내 정치적 실책으로 인해 최소한의 동아시아 역내 영향력까지 상실해 가면서 자국의 운명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된 2017년 현 상황에 대한 나타내는 신조어인 셈이다.
한때 대선후보들조차 이 신조어의 의미를 잘 모르고 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 외교부장관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용어”라고 언급한 적이 있고 정례브리핑을 통해 “최근 국내 언론 등에서 사용하는 ‘코리아 패싱’이라는 특이한 용어가 정확히 무슨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미국 등 국가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국정공백 사태의 가운데 한국은 새롭게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맺지 못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서둘러 방한했지만 정작 북핵(北核) 대응에서 한국은 논의 과정부터 노골적으로 제외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이것이 코리아 패싱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게 된 기본 배경일 것이다.
“노 스키핑(No Skipping)”. 적어도 미국에게는 한국에 대한 코리아 패싱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한국에 온 트럼프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차제에 국적불명의 “코리아 패싱” 논란은 봉합됐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세계로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